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지순 시인 / 내일은 화사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30.

김지순 시인 / 내일은 화사

 

 

  이슬 사우나 안에서 잠자는 그녀 어디로 가나 당초무늬 머리칼 벽화 따라 진달래 꽃그늘 속으로 기어가나 시간을 포승줄로 묶어 스윽 배밀이하는 그녀가 보여 새콤달콤 위대한 밥상을 뒤로하고 살벌하게 감량한 그 많은 살을 덮어두고 억,억 숨차게 달려온 공시지가 엎어두고 한구덩이 불쏘시게로 그슬린 냄새, 화음 남겨두고 조명탄으로 쏘아 올린 눈부신 소굴 속을 빠져나가나 실비 우는 소리에 실뱀 우는 휘파람 소리로 기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리 엮어 가장 먼 그녀를 부르나

 

  태고의 사과 먹던 기억이 뢴트겐처럼 안을 훑고 가나 열 마장도 못간 말풍선에 시스룩 치마가 홀랑 뒤집혀 졌나 붉게 빚은 염문을 누군가 돌팔매질 하는 게 보여 일랑일랑꽃*향이 아침으로 달려가 노을 물고 커튼 뒤로 숨었을 거야 그니의 몸을 태웠을 거야 칭얼칭얼 달빛이 젖은 옷을 하나씩 벗겨주었을 거야 알몸의 허물이 독창을 불렀나 봐 흠흠 지독한 화인이야 들쥐 잡던 독니로 피를 빨던 그녀를 처녀림 숲에서 호출 하나 햇빛 조증 달빛 울증 시려워 꿈 밖 끈끈이풀섶 떨치고 어디를 가나 먼먼 움집의 권속 꾸리려 거슬러 올라가나

 

  화사한 고백하러 도망치듯 직선으로 가나  

 

* 극도로 감각적인 향기가 나는 꽃중의 꽃이란 뜻

 

 


 

 

김지순 시인 / 너는 누구니

 

 

하얀 눈 걷어내고

비집고 나온

너는 누구니

작은 잎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꽃잎 달고

 

앙증맞고 귀여운 얼굴

천사처럼 배시시 웃으며

꽃잎 활짝 열고

하늘 올려다보는

너는 누구니

 

움츠린 작은 꽃잎 위로

살얼음 앉아 쉬어가는데

구부러진 허리

꼿꼿이 새우려 애쓰는

너는 누구니

 

작은 꽃잎에 앉아

너를 차갑게 하는

새하얀 눈꽃이

아름답다 못해

나는 밉구나 정말 밉구나

 

 


 

 

김지순 시인 / 노거수 로그인

 

 

1

 

저 허공에 뜬 천 개 이파리는 그녀의 눈이다

 

2

 

그녀는 지독한 근시다

당신이 있을 것 같아 잔뜩 시간을 거둔 채

앞만 보고 그리움의 종착역으로 간다

그녀는 눈마다 빛을 섬긴다

햇살 넝쿨 잡아당겨 거푸 오르다

웅숭깊은 초록의 간이역에선

물관부 타고 내처 강물로 내려가

희번뜩 배를 뒤집은 물고기의 살내음을 맡는다

아슬아슬한 가지 끝까지 끌어 올린다

싱싱한 비린 맛 코에 걸고 몸에도 걸쳐

도처에 도끼 눈 치켜 뜬 울퉁불퉁한 길

죽을 힘 다해 배밀이로 당신에게 간다

서둘러 개찰구 없는 황량한 거리로 떨어져나간

이파리, 이파리 사이 입 속에서 툭툭 뱉어진

수많은 검은 이파리를 천지간에 그녀는 모른다

우듬지에 사는 하늘빛 환승역에 닿기까지

대장정의 거리를 그녀는 잴 줄 모른다

저마다 아집으로 꼿꼿이 선 뿌리의 깊이

톱날에 잘려나간 흠집투성이의 둘레도

한낱 눈 밖으로 스쳐가는 희미한 그림이다

길을 먹고 길을 가는

헐렁한 幻의 조리개를 굴려

당신에게 간다

 

3

 

그녀는 난시에 진력이 났다

찍-찍 어치의 소음과 새털구름이 앉았다 떠났다

구름의 꼬리를 물어 뜯어내자

두꺼운 암운이 대기 중이다

그녀의 눈에는 자꾸 헛거미가 잡힌다

온몸이 스멀거린다 먼 바다의 소용돌이

이명으로 들이친다 수천 리 길을 가로질러

한 호흡으로 휘몰아오는 태풍의 눈

미증유의 참사를 마련 한다

돌격대의 뿔 달린 짐승처럼

보이는 대로 집어 삼키는 난바다

허공을 뜯어먹던 습성대로 돛폭을 찢고

사나운 발톱으로 구멍을 내어 물이 차오른다

가랑이 아래로 뻗어간 시간의 뿌리로

지상을 움켜쥐고, 그녀는

만조선의 리아스식 해안을 오르내린다

서슬 푸른 공포는 짐승의 너울성 공복 속으로 기화한다

눈을 크게 뜰수록 그녀의 다초점렌즈는

평일 오후 기도처럼 흩어진다

바람의 너비만큼 휜 그녀는

지상의 슬픔에 쉬 젖지 않는다

수없이 떨어져나간 팔다리와 그렁그렁한 눈은

흑색 필름에 감긴 도선장의 뜬구름이다

 

4

 

그녀는 깊은 원시의 수풀에 들었다

햇빛미사가 내리 쨍쨍 거행 중이다

사마귀 한 마리가 매미의 동영상을 찍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리로 화면조정 중이다

구애에 허기진 매미 울음소리 한 순간,

낫처럼 벼려 놓은 앞발에 쏙, 빠진다

그녀가 벌인 고온다습한 사악한 평온

구름의 발치 너머 홰나무 가지에서

참새 한 마리 내내 사마귀 동영상을 관하고 있다

제법 깊은 보호색 옷을 갈아입어도

끈적끈적 감겨오는 수풀의 율법

숨죽이던 참새 바짝, 줌렌즈를 당긴다

적막은 한낮의 단애 위에서 숨가쁜 춤을 추고

우거진 세상은 누군가의 뒤통수에

중심을 두고 돌고 돌아간다

단숨에 파고들어 한 입에 꿀꺽, 집어 삼킨다

훅- 풀내음 나는 현장에 눈을 맞춘 그녀

서늘한 미사에 빠져 있다

햇빛 미사포 뒤집어 쓴 무성한 원시림

은밀한 수사가 거듭 부활한다

눈먼 바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도

그녀는 매일 바람의 현장을 관음한다

 

5

 

허공을 마름질한다

휘거나 부러지거나 떨어져 내릴 줄 아는

그녀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김지순 시인 / 눈감으면

 

 

눈감으면

볼 수 없을 것 같아

 

눈감으면

더 멀어질 것 같아

 

손바닥만한 가슴에 채워진 사랑

가슴이 시려 옵니다.

 

 


 

김지순 시인

1960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졸업. 2007년 《시에》를 통해 등단. 《시에》 작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