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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남 시인 / 이발소에서
예리한 칼을 든 사나이에게 하나 뿐인 모가지를 맡긴다
믿을 세상이 이발소 안에 있다 비누를 문대 뭉게구름을 만들어 목에 슬슬 문댄다
사나이는 능숙한 칼솜씨로 구름을 밀어낸다 모가지서 걷혀진 구름이 땅에 뚝 떨어진다 나는 구름 위에 떠서 노근한 잠에 빠져든다
세상모르게 잠의 감미로운 도취에 한 세기를 보낸 것 같다
내가 시를 쓰는 서투른 음객임을 사나이는 알 턱이 없다 내 신분이 드러날까 두렵다 사나이는 머리카락을 정교하게 다듬는 예술가 나는 난잡하고 불필요한 언어를 제거할 가위를 갖지 못했다 늘 이발소에 와서 느낀다 시를 들고 이발소에 와야 했는데 늘 이발소에 와서 후회한다
사나이는 구만 개의 머리카락을 다듬는 예술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거울 속에 잘 보인다
나도 시에서 언어의 구두쇠가 되어야 겠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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