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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 누가 울고 간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문태준 시인 / 다시 봄이 돌아오니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이웃의 목소리는 흥이 나고 커지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로이 하려 하네 심지어 여러 갈래 진 나뭇가지도 양옥집 마당의 묵은 화분도
문태준 시인 /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 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둥지에는 두어 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이 있으리 나의 가슴을 열어젖히면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나의 말은 막 껍질을 깨치고 나올 듯 작디작은 심장으로 뛰고 있으리
문태준 시인 / 따오기
논배미에서 산 그림자를 딛고 서서 꿈쩍도 않는 늙은 따오기 늙은 따오기의 몸에 깊은 생각이 머물다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어느날 내가 빈 못을 오도카니 바라보았듯이 쓸쓸함이 머물다 가는 모습은 저런 것일까요 산 그림자가 서서히 따오기의 발목을 흥건하게 적시는 저녁이었습니다.
문태준 시인 /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노랗게 잘 익은 오렌지가 떨어져 있네 붉고 새콤한 자두가 떨어져 있네 자줏빛 아이리스 꽃이 활짝 피어 있네 나는 곤충으로 변해 설탕을 탐하고 싶네 누가 이걸 발견하랴,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태양이 몸을 굽힌, 미지근한 어스름도 때마침 좋네 누가 이걸, 또 자신도 주우랴, 몸을 굽혀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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