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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곤택 시인 / 파(波)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9.

임곤택 시인 / 파(波)

 

 

  거리는 넓고

  느릿느릿 여자와 남자들이

  눈의 은막을 빠져나간다

 

  코트를 젖히려는 언 주둥이들

  곱은 맨손으로

  가슴에 묻은 눈송이를 뗀다

 

  서울, 겨울의 유배지(流配地)

  일방통행을 잘못 든 택시는 주춤거리며

  방향을 바꾼다

 

  미끼처럼 오므린 주둥이들

  그것을 덥썩 물고 튀어 오르는 하얀 주둥이들

 

  빨간 간판 껌뻑거리는 지하 이발소

  그녀는 눈 내리는 바깥을 무덤덤히 주무를까

  얼어붙은 식사를 헤집는다

  이런 곳에도 고양이가 사는구나

 

  2012년 겨울, 내일은 2012년 겨울

  주차권을 끊어주는 늙은 사내는 2012년 겨울

  눈발이 굵어진다

 

  지폐로 바꿀 수 없는 소유물의 모든 목록

  천 개, 그리고 만 개쯤

  발등에 몸을 붙이는 하얀 주둥이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1월호 발표

 

 


 

임곤택 시인

전남 나주에서 출생.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지상의 하루』(문예중앙, 2012)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