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시인 / 갈림길에서
체온도 지탱하기 어려운 이 음산한 고난의 땅 역사의 실패한 땅에서 일어서야 할 민족이기에 한 가닥 희망의 길을 찾아 우리 갈 길을 가야 한다
인류의 역사 위에 수많은 의인들이 걸어간 거룩한 피와 눈물이 밴 진리와 아름다움의 길 그 길이 너무도 또렷이 우리 앞에 놓여 있구나
눈물과 땀과 피는 인간이 가진 세 가지 재산 기원과 봉사와 희생 거기 영생의 길이 있네 험하고 가파로와도 오직 그 길만이 사는 길!
너와 나, 식어져버린 가슴 속의 사랑의 피 그 피 다시 끓이면 거기 화사한 장미꽃 피고 눈부신 부활과 영광의 길 우리 앞에 열리리라
이은상 시인 / 강둑에 주저앉아
문득 보니 미국 병정 총 들고 길 앞을 막네 미군의 담당구역이라 통행증을 보이라 하네 남한 쪽 분계선 안에서마저 자유 없는 이 지역!
산도 내 산이요 강도 내 강인데 날더러 그 누구 앞에 무슨 증표 뵈란 말요 강둑에 주저앉아서 목을 놓고 울어버린다
지지리도 못난 주인아 네 강산 보기가 부끄러우냐 정녕 부끄럽거든 고개 숙이고 지나가렴 말 없이 돌장승처럼 눈 내려감고 서 있는 사람
언덕에서 내려다 뵈는 악마의 골짜기 군사분계선 옛날엔 남북으로 기차 다니던 정거장 자리 레일은 우거진 잡초 속에 가로누운 채 잠들었고
녹슨 레일 위에 괴물 같은 저 기관차 벌떡 일어나 우렁차게 울어 이 적막한 하늘 못 흔드느냐 지금 곧 북으로 북으로 냅다 한 번 달리자꾸나
이은상 시인 / 검은 구름 토하는 고개
이름조차 험한 산 고개 '검은 구름 토하는 고개' 구름이 장막처럼 몸을 휩싸고 비를 몰아오는 바람소리 세기의 종말을 고하는 선지자의 선언과도 같이
진실! 진실을 잃어버리면 거기는 캄캄한 지옥 허위의 얼굴을 대하면 악마보다 더 무서워 지구가 온통 검은 구름에 휩싸여 있는 오늘이다
여기 불타고 말라 죽어 잎사귀 하나 없이 헐벗은 나무 인간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고 서 있는 것 같아 경건히 그 십자가 아래 서서 속죄의 기도를 올린다
방향을 잃은 인간들 허위적거리는 발등에 차라리 이 순간 뇌성벽력이라도 쳤으면 싶다 주춤 서 검은 구름 토하는 고개 올려다 보는 심정이여!
이은상 시인 / 고석정(孤石亭)
아름다 와라 절경 한 구역 예부터 이름난 고석정 물은 깊어 검푸르고 골은 돌아 몇 굽인데 3백 척 큰 바위 하나 강 복판에 우뚝 솟았네
위태론 절벽을 다람쥐? 기어올라 갈길도 잊어버리고 강물을 내려다보는 뜻은 여기서 전쟁을 끝내고 총 닦고 칼 씻던 곳이라기
소석정 외로운 돌아 오늘은 아직 너 쓸쓸하여도 저 뒷날 많은 사람들 여기 와 평화의 잔치 차리는 날 낯 익은 시인은 다시 와서 즐거운 시 한 장 또 쓰고 가마
이은상 시인 / 고통과 부활
이 고통 아프다 말라 차라리 값진 고통이다 발로 짓밟고 눈 얼음 쌓여도 새 싹 움트는 밀알과 같이 믿어라 의심치 말고 믿어라 우리에겐 분명히 부활이 있다
길이 끝났다 말라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길 철조망 장벽 앞에서 우리 갈 길을 보았다 열어라 살육의 광야에서 부활의 길을 뚫어라
통일과 사랑 이뤄지는 날 자유와 평화 도로 찾는 날 탁류에 휩쓸려 가는 인간의 양심 회복하는 날 거기에 민족과 인류가 되살아나는 영광의 부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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