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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은상 시인 / 갈림길에서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8.

이은상 시인 / 갈림길에서

 

 

체온도 지탱하기 어려운

이 음산한 고난의 땅

역사의 실패한 땅에서

일어서야 할 민족이기에

한 가닥

희망의 길을 찾아

우리 갈 길을 가야 한다

 

인류의 역사 위에

수많은 의인들이 걸어간

거룩한 피와 눈물이 밴

진리와 아름다움의 길

그 길이

너무도 또렷이

우리 앞에 놓여 있구나

 

눈물과 땀과 피는

인간이 가진 세 가지 재산

기원과 봉사와 희생

거기 영생의 길이 있네

험하고

가파로와도

오직 그 길만이 사는 길!

 

너와 나, 식어져버린

가슴 속의 사랑의 피

그 피 다시 끓이면

거기 화사한 장미꽃 피고

눈부신

부활과 영광의 길

우리 앞에 열리리라

 

 


 

 

이은상 시인 / 강둑에 주저앉아

 

 

문득 보니 미국 병정

총 들고 길 앞을 막네

미군의 담당구역이라

통행증을 보이라 하네

남한 쪽

분계선 안에서마저

자유 없는 이 지역!

 

산도 내 산이요

강도 내 강인데

날더러 그 누구 앞에

무슨 증표 뵈란 말요

강둑에

주저앉아서

목을 놓고 울어버린다

 

지지리도 못난 주인아

네 강산 보기가 부끄러우냐

정녕 부끄럽거든

고개 숙이고 지나가렴

말 없이

돌장승처럼

눈 내려감고 서 있는 사람

 

언덕에서 내려다 뵈는

악마의 골짜기 군사분계선

옛날엔 남북으로

기차 다니던 정거장 자리

레일은

우거진 잡초 속에

가로누운 채 잠들었고

 

녹슨 레일 위에

괴물 같은 저 기관차

벌떡 일어나 우렁차게 울어

이 적막한 하늘 못 흔드느냐

지금 곧

북으로 북으로

냅다 한 번 달리자꾸나

 

 


 

 

이은상 시인 / 검은 구름 토하는 고개

 

 

이름조차 험한 산 고개

'검은 구름 토하는 고개'

구름이 장막처럼 몸을 휩싸고

비를 몰아오는 바람소리

세기의

종말을 고하는

선지자의 선언과도 같이

 

진실! 진실을 잃어버리면

거기는 캄캄한 지옥

허위의 얼굴을 대하면

악마보다 더 무서워

지구가

온통 검은 구름에

휩싸여 있는 오늘이다

 

여기 불타고 말라 죽어

잎사귀 하나 없이 헐벗은 나무

인간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고 서 있는 것 같아

경건히

그 십자가 아래 서서

속죄의 기도를 올린다

 

방향을 잃은 인간들

허위적거리는 발등에

차라리 이 순간

뇌성벽력이라도 쳤으면 싶다

주춤 서

검은 구름 토하는 고개

올려다 보는 심정이여!

 

 


 

 

이은상 시인 / 고석정(孤石亭)

 

 

아름다 와라 절경 한 구역

예부터 이름난 고석정

물은 깊어 검푸르고

골은 돌아 몇 굽인데

3백 척

큰 바위 하나

강 복판에 우뚝 솟았네

 

위태론 절벽을

다람쥐? 기어올라

갈길도 잊어버리고

강물을 내려다보는 뜻은

여기서

전쟁을 끝내고

총 닦고 칼 씻던 곳이라기

 

소석정 외로운 돌아

오늘은 아직 너 쓸쓸하여도

저 뒷날 많은 사람들

여기 와 평화의 잔치 차리는 날

낯 익은

시인은 다시 와서

즐거운 시 한 장 또 쓰고 가마

 

 


 

 

이은상 시인 / 고통과 부활

 

 

이 고통 아프다 말라

차라리 값진 고통이다

발로 짓밟고 눈 얼음 쌓여도

새 싹 움트는 밀알과 같이

믿어라

의심치 말고 믿어라

우리에겐 분명히 부활이 있다

 

길이 끝났다 말라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길

철조망 장벽 앞에서

우리 갈 길을 보았다

열어라

살육의 광야에서

부활의 길을 뚫어라

 

통일과 사랑 이뤄지는 날

자유와 평화 도로 찾는 날

탁류에 휩쓸려 가는

인간의 양심 회복하는 날

거기에

민족과 인류가 되살아나는

영광의 부활이 있다

 

 


 

이은상(李殷相) 시인 / 1903∼1982

시조 시인. 호는 노산(鷺山). 경남 마산에서 출생. 마산 사립 창신 학교 고등과를 나와 1923년에 연희 전문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에 유학,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서 수업하였다. 그 후 월간지 '신생'을 편집했고, 1931년에 이화 여전 교수가 되었다. 광복 후 '호남 신문' 사장과 서울대,영남대 교수등을 지냈고, 1954년에는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 사업 회장, 민족 문화 협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시조 작가 협회장 및 숙명여대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에 노산 시조 문학상을 제정하였고, 1981년에 국정 자문 위원에 위촉되었다. [봄처녀] [옛동산에 올라] [가고파] 등으로 고유한 전통의 시 형식인 시조

의 현대화에 기여하였고, 1932년에 간행된 '노산 시조집'은 1920년대의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의 시조 부흥론에 의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저서에는 '이충무공 일대기' '민족의 향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