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시인 / 꿈을 생각하며
목적은 한꺼번에 오려면 오지만 꿈은 조금씩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한다.
목적은 산마루 위 바위와 같지만 꿈은 산마루 위의 구름과 같아 어디론가 날아가 빈 하늘이 되기도 한다.
목적이 연을 날리면 가지에도 걸리기 쉽만 꿈은 가지에 앉았다가도 더 높은 하늘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그러기에 목적엔 아름다운 담장을 두르지만 꿈의 세계엔 감옥이 없다.
이것은 뚜렷하고 저것은 아득하지만 목적의 산마루 어디엔가 다 오르면 이것은 가로막고 저것은 너를 부른다. 우리의 가는 길은 아 ㅡ 끝 없어 둥글고 둥글기만 하다.
김현승 시인 / 지각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김현승 시인 / 희망이라는 것
희망. 희망은 분명 있다. 네가 내일의 닫힌 상자를 굳이 열지만 않는다면….
희망. 희망은 분명히 빛난다. 네가 너무 가까이 가서 그 그윽한 거리의 노을을 벗기지만 않으면….
희망. 그것은 너의 보석으로 넉넉히 만들 수도 있다. 네가 네 안에 너무 가까이 있어 너의 맑은 눈을 오히려 가리우지만 않으면….
희망. 희망은 스스로 네가 될 수도 있다. 다함 없는 너의 사랑이 흙 속에 묻혀, 눈물 어린 눈으로 너의 꿈을 먼 나라의 별과 같이 우리가 바라볼 때…
희망. 그것은 너다. 너의 생명이 닿는 곳에 가없이 놓인 내일의 가교(架橋)를 끝없이 걸어가는, 별과 바람에도 그것은 꽃잎처럼 불리는 네 마음의 머나먼 모습이다.
김현승 시인 / 마음의 집
네 마음은 네 안에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 안에 있다. 마치 달팽이가 제 작은 집을 사랑하듯…
나의 피를 뿌리고 살을 찢던 네 이빨과 네 칼날도 내 마음의 아늑한 품속에선 어린아이와 같이 잠들고 만다. 마치 진흙 속에 묻히는 납덩이도 같이.
내 작은 손바닥처럼 내 조그만 마음은 이 세상 모든 榮光을 가리울 수도 있고, 누룩을 넣은 빵과 같이 아, 때로는 향기롭게 스스로 부풀기도 한다!
東洋의 智慧로 말하면 가장 큰 것은 없는 것이다. 내 마음은 그 가없음을 내 그릇에 알맞게 줄여 넣은 듯, 바래움의 입김을 불면 한없이 커진다. 그러나 나의 지혜는 또한 風船처럼 터지지 않을 때까지만 그것을…
네 마음은 네 안에 있으나 나는 내 마음 안에 살고 있다. 꽃의 아름다움은 제 가시와 살보다 제 뿌리 안에 더 풍성하게 피어나듯…
김현승 시인 / 창
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에게 오늘의 뉴우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십이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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