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 시인 / 창백한 스타인 씨*
창백한 스타인 씨, 울고 싶으면 울어요. 산산조각난 영혼을 움켜쥐세요. 당신이 믿는 신이 나빠요. 당신이 나쁜 것은 없어요. 구두가 불에 녹듯이 당신이 사랑하는 딸아이의 얼굴이 녹아버렸군요. 창백한 스타인 씨, 울고 싶으면 울어요. 많이 울면 강해질 수 있죠. 그리고 몸을 일으켜 짐을 져요. 짐을 진 허리를 세우며 이 고통스러운 땅에 깊은 발자국을 심어야죠. 그리고 눈물을 뿌려요. 눈물 먹은 발자국이 자라,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슬픔의 영토를 개간해야죠. 창백한 스타인 씨, 밤마다 당신 옆구리를 파고들던, 재잘거리던 딸아이의 눈동자를 알고 있죠. 그 눈동자는 당신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이미 하늘에 올라가 작은 등이 된 딸아이의 눈동자. 그것은 약하고 낮은 사람들이 모두 가질 수 있는 燈, 창백한 스타인씨, 당신은 그 燈에 불을 켜야 해요. 그 등불을 통해 저 너머를 바라봐야죠. 딸아이와 당신이 꿈꾼 단 한 번의 저녁.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스타인 씨에게는 기적이었던 저녁의 안식을요.
*창백한 스타인 씨는 팔레스타인의 스펠링 ‘Palestine’을 Pale(창백한)과 스타인으로 나눈 것으로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딸아이의 주검을 껴안고 울부짖는 팔레스타인의 젊은 아버지 사진을 보고 그의 이름을 ‘스타인’이라고 상상해본 것이다. 창백한 스타인 씨에게 이 시가 위로가 되기를.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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