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 시인 / 형용사가 가득한 의자
벽을 타고 있었다 그날 음악은 없었고 의자 밖으로 나간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데 의자는 구부러진 벽이다 의자가 의자를 들고 벽속으로 걸어가는데
고요히, 불타오르는, 점점 진해지다 희미해지는 당신이라 부르면 안되나요 동시에 둘이, 우리 둘이 앉으면 꿈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앉았다 날아간 수많은 온기가 딱딱해져요 시계 초침이 벽을 걸고 나와 함께 사라진다 시간의 뒷덜미를 의자에 묶고
그날처럼 모든 건 눈앞에서 사라져요 ‘기다려’ 다리를 모으고 의자가 젖고 또 젖어가는
벽은 불가능한 무늬를 멈추지 않고 어떤 소리를 삼키고 잠자는 걸까요 문장들이 주어를 지우며 나는 타들어가는 의자에 앉는다
다시 벽이, 벽들이 다가온다 꿈을 뚫고 모든 것을 삼킨 의자가 잠든 나를 바라봐요 늘어진 팔다리를 만져요 무릎의 깊은 무늬가 잠깐 환해졌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다
당신의 두 다리를 껴안고 사라진 의자에 앉아
벽과 함께 눈앞에서 나는 다시 사라진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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