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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새해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2. 20.

피천득 시인 / 새해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피천득 시인 / 시월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피천득 시인 / 어떤 유화

 

 

오래 된 유화가 갈라져

깔렸던 색채가 솟아오른다

 

지워 버린

지워 버린 그 그림의

 

 


 

 

피천득 시인 / 연정

 

 

따스한 차 한잔에

토스트 한 조각만 못한 것

포근하고 아늑한 장갑 한 짝만 못한 것

잠깐 들렀던 도시와 같이 어쩌다 생각나는 것

 

 


 

 

피천득 시인 /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 시인 / 우정

 

 

등덩굴 트레이스 밑에 있는 세사발

손을 세사 속에 넣으면 물기가 있어 차가웠다.

왼손이 들어있는 세사위를 바른 손바닥으로

두들기다가 왼손을 가만히 빼내면

두꺼비집이 모래 속에 작은 토굴같이 파진다.

손에 묻은 모래가 내 눈으로 들어갔다.

영이는 제 입을 내 눈에 갖다대고

불어주느라고 애를 썼다.

 

한참 그러다가 제 손가락에 묻었던 모래가

내 눈으로 더 들어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영이도 울었다. 둘이서 울었다.

어느 날 나는 영이 보고

배가 고프면 골치가 아파진다고 그랬다.

"그래 그래" 하고 영이는 반가워하였다.

그때같이 영이가 좋은 때는 없었다.

 

 


 

 

피천득 시인 / 이 순간

 

 

이 순간 내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시인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 상해 호강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 영문과를 졸업.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을 발표하여 등단.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수필집 "인연", "금아 문선", 시집에 "서정 시집", "금아 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지냈다. 199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 제9회 인촌상 (문학부문). 1999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