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진돈 시인 / 별과 수도원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5. 17.

김진돈 시인 / 별과 수도원

 

 

몽생미셀 베네딕도 수도원 성벽에는 별들이

푸른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유성처럼 떨어진 섬,

성벽위에는 온종일 미카엘 천사가 별 이삭을 줍고 있었다

 

山脈들이 유리딱새떼처럼 삐요로로 삐요로로

몰려들고 줍자 놓친 별들 몇 개가

툭,

튕겨져 나와

푸른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김진돈 시인 / 전이된 불빛

 

 

그녀는 붉은 혀를 움직였어 방안 가득 일렁이는 그녀를 만날 수 있네 입천장에서 기다림 밖으로 그녀는 빠져나왔지 갑자기 짜릿하다고 말하네

 

그녀는 커졌지 날마다 허공을 마시며 모래성 같은 날들이 매일매일 무너졌지 캔디는 향기를 뿌리내리며 마음껏 꽃을 키웠네 얼굴을 허공에 감췄네

 

눈가에 빨려드는 봄빛 스며드는 교향곡이 팽팽하게 펴졌지 봄빛에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두 손을 벌린 낯선 오후 그녀는 붉은 혀를 움직였어

 

 


 

 

김진돈 시인 / 그리운 정지선

 

 

망설이는 달빛 아래, 건너가는 달빛도 있었다 나도 달빛 아래를 건너가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한 조각 허공으로 남고 싶었다

 

차마 나는 기지개를 켤 수 없었다

 

고고했던 달빛을 떨어뜨려 시간과 공간으로 번지는 달빛

 

고인 달빛 속에서 달빛 마신 새싹이 건너오고, 아름드리나무가 건너오고, 하얗게 고사목이 된 나무가 부축도 없이 건너온다

 

은하수 별들이 파문처럼 번진다. 번질수록 가득 지워지는 달빛, 저 편백나무 아래의 밤 하늘, 가슴 떨린판, 나는 한 조각 허공이 소리 없이 떨리는 것을 지켜본다

 

편백나무 옆, 가을의 달빛이 고이고 있었다

 

 


김진돈 시인 / 떨어진 말들

 

 

달이 나를 낳고 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말들, 그 속에 가느다란 달이 또 하나 뜨고 있다 푸른 비단 깔린 오솔길, 은사시나무 귓속말하는 허공 사이로 달이 뜬다 그 안에 내가 있다

 

벽, 느닷없이 벽이라고 써본다 벽이 내게 말을 한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손목이 떨어진다 손가락을 떼어낸다 떨어진 말들이 벽에서도 나온다

 

꺾어진 길 한 모퉁이에서 짙어진 단풍 한 잎

 

손가락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어언 내 안도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김진돈 시인(수필가)

경희대 한의과대학 및 同 대학원 졸업. 박사학위 받음. 현재 송파문인협회회장. 윤제당 한의원장. 2011년 계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 섬을 만나다』(시와세계, 2012)가 있음.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