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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선 시인 / 뚜껑
오피스텔에서 내려다 본 운니동 기와집들 검은 뚜껑들이 다닥다닥 세월을 덮고 있다 뚜껑을 열면 그늘 쓰고 문명을 피해 들어앉았던 개화 덜 된 세간살이가 비춰지면서 속속들이 차있는 나직한 군상들의 내부가 햇빛에 파르라니 눈 흘길 것 같다
뚜껑 속에 잠겨 있는 벽에 걸린 아이 낙서의 표정 마당 가운데 흐르는 수도의 사계절 개집 옆 작은 화분들의 자투리 여유 담장에 널린 이불의 낮과 밤 대문에 세워둔 자전거에 감긴 거리 한 사람당 할당된 시간과 공간이 똘똘 뭉쳐져 제자리에서 굴러가고는
세월의 뭉치마다 속도 다른 흔적들이 지워질랑 말랑한 뚜껑엔 다시 리모델링된 비밀번호가 채워지고 내 뚜껑은 24시간 개방돼 있어도 모호한 채 무늬만 내고 있는데
어느 날 열린 지붕 아래 테라스가 된 발 밑에서 내 뚜껑 속을 올려다보고 손짓하는 40년 전 상고머리 계집아이가 생경한 건 낮은 곳 앞서 흐른 삶의 기복들도 덮개 안에서는 그만치 출렁거리다 넘치고 싶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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