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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탁경자 시인 / 그믐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15.

탁경자 시인 / 그믐

 

 

어둠에 달이 걸려 있는 밤에는

담장 너머 우물에서

사르락사르락 물 퍼 올리는 소리가 들리고는 하였는데

그런 밤에는 잔별이 내려와

그녀의 하얀 등을 만지고 가는지

밤새 물소리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오래전 서울에선가 내려와

폐병이 걸린 동생을

수년 동안 간호하는 누이를 보고

누구는 구절초 갔다고 했는데

글썽 고여 있는 눈에

낯선 이데올로기에서 절뚝거리며 돌아온

동생의 기침소리가 길어갈수룩

꼬리 달린 소문이

가시덤불처럼 무성하다

 

바람이 떠돌다 잠깐인 듯,

신음하는 내력을 적어 놓고 사라지기도 하는

 

그녀가 그믐에 갇혀 있는 밤이었다

 

-『시인시대』2020년 가을호

 

 


 

탁경자 시인

2017 <애지>에 「거푸집」, 「아버지의 강」, 「못」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