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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시인 /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처음 찍은 발자국이 길이 되는 때 말의 반죽은 말랑말랑 할 것이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일 것이다
아랫도리를 겨우 가린 여자와 남자가 신석기의 한 화덕에 처음 올려놓았던 말. 발가벗은 말. 얼굴을 가린 말. 빵처럼 향기롭게 부풀어 오른 말. 넘치고 끓어오르는 말. 버캐 앉는 말. 빗살무늬 허공에 암각된 말.
처음 만난 노을을 허리띠처럼 차고 만 년 전 바람이 만 년 전 숲에서 불어온다 뒤돌아보는 여자의 열린 치맛단 아래 한번도 씻지 않은 말의 비린내 훅 끼쳐온다 여자가 후후 부풀린 불씨가 쏙독새 울음소리에 옮겨 붙는다 화덕 앞에 쪼그린 아이들 뜨겁게 반죽한새소리를 공깃돌처럼 굴리며 논다 진흙 같은 노을 속에 층층 켜켜 찍히는 손가락 자국들,
귀먹은 아이는 자꾸 흩어지는 소리를 뭉치고 굴린다 깊고 먼 어둠을 길어 올려 둥글게 반죽한다 천 개의 나뭇잎들이 천 개의 귀를 붙잡고 흔드는 소리, 목구멍 속에서 쏙독새 울음소리가 허공을 물고 터져나온다
바람이 석류나무 아래서 거친 숨결을 고르자 처음부터 거기 살고 있는, 아직도 증발하지 않은 침묵의 긁힌 알몸이 보인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인 그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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