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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희 시인 / 유산(遺産)
시멘트를 껴안고 몇 백 년 가는 나무처럼 옹크린 다리를 양팔로 껴안고 수십 년은 거뜬한 쪼그리고 앉은 사람
추위가 닥치기 전 이동해야 할 궁리를 다 해본다 지금은 신혈거시대(新穴居時代)
쪼그리고 앉는 것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유산
모태에서부터 언제든 이동할 자세가 돼 있는 집 없는 사람 덩달아 쪼그리고 앉은 살림살이들
그늘이 워낙 깊어 온통 환해 보이는 바깥 거느리고 있는 것은 그늘 속 그늘 컴컴한 짐승처럼
파이고 쓸려 가파른 한낮의 체위
박설희 시인 / 충혈
거센 바람에 떠밀려 가다 보았다 공중에 멈춘 갈매기 한 마리
날개를 힘껏 쫙 펴고 필사적으로 견딘다 깃털마다 부풀리는 바람
침묵으로 저항하는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린다 떠밀리면 모든 게 끝이라는 듯 충혈된 몸
저 멀리 궁평항 방파제에는 새우깡을 낚아채는 부리들의 묘기로 함성과 웃음이 폭죽처럼 터지는데 날개를 꺾을 듯 몰아치는 바람 속 공중에 닻을 내려 버틴다, 세상의 바람은 다 와보라는
그 시선이 뚫어지게 닿은 곳 출렁이며 꿈쩍 않는 바다 잔비늘 낱낱이 온통 불타오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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