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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시인 / 제주 돌담길
오리만한 갈매기들이 갯벌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해안으로 가는 돌담길 콘크리트 도로포장에 고라니와 게들의 발자국이 꽃무늬 화석처럼 찍힌 돌담길 돌구멍 사이로 빠져나간 바닷바람의 촉감이 손가락 끝에 만져지는 돌담길 동백나무와 삼나무가 꽃과 이파리를 핏물처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돌담길 이끼와 담쟁이에 한밤 중 달빛 그림자가 여우꼬리자국처럼 남아있는 돌담길 한라산 용암의 검은 침묵이 벽돌처럼 쌓여 꿈과 환상의 책을 제본한 돌담길
김백겸 시인 / 세 개의 주머니*
바람이 미칠듯이 불었습니다 정원의 넝쿨장미와 황금측백나무와 남촌이파리가 불꽃처럼 흔들렸습니다 나는 불처럼 흐르는 시간의 물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라호가 불던 내 초등학교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기왓장과 판자울타리가 뜯겨 나갔고 나는 온 몸이 종이우산처럼 뜯겨 나갈까 두려웠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불어난 큰 개울의 물소리 앞에서 나는 두려운 아이였습니다
매듭으로 봉한 세 개의 주머니를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머니엔 돛을 밀어주는 순풍을 두 번째 주머니엔 배를 항구에 가두는 강풍을 세 번째 주머니엔 바다를 뒤집는 폭풍을 매듭하나가 풀어져 바람 앞의 촛불처럼 깜박이던 내 사십대가 생각났습니다 시간의 만년빙하가 녹은 물소리와 바람소리는 꿈속에서도 소리를 냈습니다
바람이 뚝 그치자 죽음 같은 평화였습니다 넝쿨장미와 황금측백나무와 남촌이파리가 침묵 속에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단풍나무 가로수도 드리워진 구름도 침묵이었습니다 금이 갈라진 보도블록도 주차장도 침묵이었습니다 저녁이 황혼과 함께 왔습니다 나는 캄캄해진 마음으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매듭으로 봉한 세 개의 주머니를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북구의 전설에 어부는 운명의 주머니에 세 개의 바람을 넣어 태어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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