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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영배 시인 / 불타는 그네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18.

신영배 시인 / 불타는 그네

 

 

  그네는 붉다

  노을이다

  쇠줄은 차갑다

  노을이 붉은 얼음상자를 끌고 간다

  혀가 얼음에 붙어 따라간다

  머리카락이 날리고

  그녀의 쇄골이 드러난다

  혀가 빠져나간 입 구멍이 그녀의 가슴에 붙어 있다

  노을이 파 놓은 그 구멍 속에 부리를 박고

  저녁의 이면을 통과하지 못한 새가 죽어 있다

  당신이 뒤에서 그네를 민다 천천히

  노을이 핏빛을 뿌린다 그네는 불에 탄다

  활활 그녀의 치마가 하늘로 전진하며 붉게 퍼진다

  활활 새의 날개가 가슴에 파고든다

  활활 구멍으로 말을 한다

  그녀의 가슴이 괄다 구멍이 점점 벌어진다

  허공에서 그네가 머문다

  삐걱거리는 쇳소리로 저녁이 내려올 때

  그녀의 등이 탄다 뒤통수가 벌어진다

  당신의 손이 더 세게 그네를 민다 당신의 손도 탄다

  그네와 함께 저녁을 젓는 손

  당신의 혀는 당신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혀는 더 이상 말을 만들지 않고

  당신의 손이 더 이상 그녀의 등에 닿지 않는 저녁

  그네는 붉다 노을 속으로 날아 들어간

  가벼운 소녀다 첨벙 뛰어든 처녀다

  화장되는 노파다

  붉은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당신이 돌아간다

 

ㅡ 2007년, 월간 『현대시』 5월호 발표 ㅡ

 

 


 

신영배 시인

1972년 충남 태안에서 출생. 2001년 계간 《포에지》에 〈마른 피〉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기억이동장치』(열림원, 2006)와  『오후 여섯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문학과지성사, 2009) 가 있음. 제2회 김광협 문학상(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