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석본 시인 / 마네킹의 살아있는 고백
처음 시작은 스스로 가슴을 비우는 일이었어 가슴 한 구석을 채웠던 그리움과 슬픔과 눈물을 각각 분해하여 기억 안에서 하나씩 지우는 일이었지 지금 나의 가슴은 텅 비었다 텅 빈 그 안을 실리콘과 석고로 채우고 나사와 못으로 가슴과 얼굴을, 팔과 다리를 잇고 변하지 않는 색상을 입혀 일정한 표정의 조각으로 웃음을 가졌지 사실은 여기까지 스스로의 일이 아닌 누군가가 꿰어 맞춰 준 것이다 이렇게 주어진 웃음으로 당신과 관계할 것이다 당신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라고 증언할 때까지 살아있는 것처럼 꼿꼿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ㅡ『시인시대』(2020. 가을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종택 시인 / 이사 외 1편 (0) | 2021.07.19 |
|---|---|
| 손현숙 시인 / 꽃 터진다, 도망가자! (0) | 2021.07.19 |
| 고희림 시인 / 지평선에서의 하룻밤 (0) | 2021.07.19 |
| 송과니 시인 / 검정비닐봉지와 밤비 (0) | 2021.07.19 |
| 신영배 시인 / 불타는 그네 (0) | 2021.07.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