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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석본 시인 / 마네킹의 살아있는 고백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19.

구석본 시인 / 마네킹의 살아있는 고백

 

 

처음 시작은 스스로 가슴을 비우는 일이었어

가슴 한 구석을 채웠던

그리움과 슬픔과 눈물을 각각 분해하여

기억 안에서 하나씩 지우는 일이었지

지금 나의 가슴은 텅 비었다

텅 빈 그 안을 실리콘과 석고로 채우고

나사와 못으로 가슴과 얼굴을, 팔과 다리를 잇고

변하지 않는 색상을 입혀

일정한 표정의 조각으로 웃음을 가졌지

사실은 여기까지 스스로의 일이 아닌

누군가가 꿰어 맞춰 준 것이다

이렇게 주어진 웃음으로 당신과 관계할 것이다

당신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라고 증언할 때까지

살아있는 것처럼

꼿꼿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ㅡ『시인시대』(2020. 가을호)

 

 


 

구석본 시인

1949년 경북 칠곡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5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지상의 그리운 섬』,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 『쓸쓸함에 관해서』,『추억론』 등이 있음. 1985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2000년 대구문학상 수상. 2008년 대구광역시문화상 수상. 현재, 대구광역시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