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두현 시인 / 빈 자리
열네 살 봄 읍내 가는 완행버스 먼저 오른 어머니가 남들 못 앉게 먼지 닦는 시늉하며 빈 자리 막고 서서 더디 타는 날 향해 바삐 손짓할 때
빈 자리는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아침저녁 학교에서 못이 박힌 나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얼굴만 자꾸 화끈거렸는데
마흔 고개 붐비는 지하철 어쩌다 빈 자리 날 때마다 이젠 여기 앉으세요 어머니 없는 먼지 털어가며 몇 번씩 권하지만
괜찮다 괜찮다, 아득한 땅속 길 천천히 흔들리며 손사래만 연신치는 그 모습 눈에 밟혀 나도 엉거주춤 끝내 앉지 못하고.
고두현 시인 / 남해 마늘
보리밭인 줄 알았지 하늘거리는 몸짓 그 연하디 연한 허리 아래 매운 뿌리 뻗는 줄 모르고 어릴적엔 푸르게 보이는 게 다 보리인 줄 알았지
배고프단 말 못하는 것들 발밑에서 그토록 단단한 마디로 맺힌다는 것 땅속으로 손비집고 문질러보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 눈물이 어떻게 소금보다 짠지 네가 왜 푸른 잎 속에 주먹밥 말아 쥐고 바닷가 밭고랑에 뜨겁게 서 있는지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경아 시인 / 긴요한 골목 (0) | 2021.07.26 |
|---|---|
| 곽문연 시인 / 어머니의 텃밭 외 2편 (0) | 2021.07.26 |
| 김네잎 시인 / 살얼음 외 2편 (0) | 2021.07.26 |
| 강기원 시인 / 무화과를 먹는 밤 외 2편 (0) | 2021.07.26 |
| 오대교 시인 / 태몽 (0) | 2021.07.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