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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잎 시인 / 살얼음
나는 깨어지도록 구성되었다
폭염 속에서도 살얼음이 번져간다 머릿속에선 유빙처럼 소모품이 떠돌고 나는 1분 전 한 바가지 물처럼 언제든 사라질 준비를 한다
경비일지를 작성하다 호출된다
내 몸의 70%는 물 나의 빙점은 36.5도 일지는 멈춰있고
내 몸이 녹으면 액체가 되는 걸까
한 평 반의 공간은 실금이 무성한 극치 가장 쓸쓸한 음지 살얼음이 녹아도 아무도 흥건함을 보지 못한다
가방을 맡기러 온 201호 아이에게 택배를 찾아가는 502호 부녀회장에게 발밑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데
바닥에서 물이 휘발되는 속도는 뿌린 자만이 알고 있다
김네잎 시인 / 심벌즈
첫 악장은 언제나 느리게 시작한다 카페 안에 고이는 B단조의 감정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연주한다
몇 개의 음표로 집약된 우리는 클라이맥스의 사생아 가지런한 배열을 안고 동시에 건반을 빠져나온다\
휴지(休止), 0.5초의 못갖춘마디를 실감하는 자리
그리고 무율의 시간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박자를 완벽하게 연주해야 하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당신도 당신의 휴지(休止)를 생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당신의 노래가 나였던 날들은 결코 없었을지 모른다 아무 떨림도 없이 아무 맥박도 없이
그러니 우리의 악보에 도돌이표를 그려 넣는다면 막다른 입장에서 더 이상 길고 슬픈 손가락을 내밀지 않아도 될 텐데
끝 악장이 서둘러 뒷모습을 지운다 손바닥만 남겨놓고 당신은 떠난다
<시현실> 2019년 봄호
김네잎 시인 / 괄호
((((((괄호를 치며 걷는다 나의 사랑스런 감옥 그날, 새로 생긴 가족들 앞에서 엄마가 나를 어디에 앉혀야 할지 쩔쩔 맬 때, 이상하게 발이 부끄러웠다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닮아 있구나 괄호는 도착하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 닫히지 않고 왼쪽으로만 자꾸 늘어나서 되돌아갈 수 없다 나는 걸어서 나이를 먹는다 한 살 두 살 스무 살 뒤쪽엔 기분이 너무나 많다 오늘 죄다 쏟아낼 것 같은 기분, 누구랑 할까 숨을 쉬면 협상이 번식한다 도착지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비밀, 원조와 원조 사이 당신들은 서 있고 목소리는 누워 있다 괄호가 닫히기 전에 누군가 오래된 직립을 쓰러트리면 나는 기쁠까 슬플까 득실거리는 눈, 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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