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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곽문연 시인 / 어머니의 텃밭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6.

곽문연 시인 / 어머니의 텃밭

 

 

무씨를 뿌려놓은 텃밭

무순이 빽빽하게 솟아나오면

어머니는 새순을 솎아 밭고랑으로 던지셨다

 

못난 놈만 뽑혀나가는 거여

빈자리가 많아야 무가 실한 법이여

 

지금껏

이랑과 이랑을 무사히 건너왔다

어머니는 질척한 밭고랑을 흙발로 업어서 건네주셨다

 

솎아낸 무는

살아남은 놈의 밑거름인 거여

 

사철 푸른 어머니의 텃밭

단단한 무

쑥쑥, 회초리처럼 자랐다

 

 


 

 

곽문연 시인 / 솔숲을 보면 눕고 싶다

 

 

산을 오르다 솔숲을 보면, 어린 시절의 싸―한 기억이 솔솔솔 떠오른다.

 

땔감을 찾아, 허기진 배 움켜쥐고 민둥산을 누비던 시절, 걸머진 지게에 등짝이 아렸다. 갈퀴로 긁어 모은 마른 솔잎들,

화르르 불길이 되어 밥을 짓고 차디찬 구들장을 데웠다. 산의 이불이던 마른 솔잎 한 짐 지고 내려오면,

헐벗은 겨울 산은 밤새 문풍지 밖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하나같이 곤곤한 이웃들, 어둠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손 갈퀴로 솔가리를 긁어보면, 낯익은 솔 향기 물씬거리고 솔잎처럼 뾰족한 기억들 되살아난다.

내 등뼈는 솔잎에 찔린 흔적이 남아 있다.

 

 


 

 

곽문연 시인 / 소리를 의심하다

 

 

내 몸은 소리의 거처이며 통로였다

 

언제부턴가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이비인후과에서 받는 청력테스트

수없이 많은 소리들이

내 몸을 흘러나간다

소리가 이끌어 온 내력들로

나는 가득 차있다

나는 이전의 젊은 날의 내가 아니다

소리들이 나를 두고 도망을 간다

 

내 생의 테두리를 맴돌고 있는 소리들

소리 안의 나

소리 밖의 나

모두가 정직한 나의 소리였을까

 

소리가 의심스럽다

 

 


  

곽문연 시인

충북 영동에서 출생. 춘천대학 상학과 졸업. 중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고대 경영대학원. 서울대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 2003년《문학마을》로 등단. 시집으로『단단한 침묵』이 있음. 한국시인협회 회원. 다층사람들 편집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