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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시인 / 데칼코마니
그 이후의 세계를 열망한다. 합체가 되어야 열리는 문이 되거나, 내 영혼을 맑게 씻어내는 나비가 되거나 한 점의 코드, 상징이 되어 있는 그대 화인처럼 굳어 오른 편에서 점점 깊어지는 빛깔이 된다.
김광기 시인 / 리-데칼코마니
점점 깊어지는 빛깔이 된다. 오른 편에서 화인처럼 굳어 상징이 되어 있는 그대 한 점의 코드, 나비가 되거나 내 영혼을 낡게 씻어내는 문이 되거나, 합체가 되어야 열리는 그 이후의 세계를 열망한다.
김광기 시인 / 개
내일 입을 바지를 오늘 밤에 빨고 있다. 쥐어짜다가 조금이라도 빨리 말릴 요량으로 바지주머니 네 개를 다 뽑아놓는다. 한여름에 헐떡거리다가 죽은 개 혓바닥들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헐떡거리며 죽은 개 바지를 입고 돌아다녔다. 하나도 아닌 네 개의 혀를 할딱거리며 거리를 쏘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기르던 개, 성견이 되기도 전에 잡아 잡수시는 아버지를 향한 원혼들이 바지에 달라붙어 그렇게 낑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밥상에서 몇 점을 얻어먹은 죄 때문에 누구를 원망도 못하고 개 같이 뛰면서 개 같은 삶을 살면서 그들의 영혼들을 위무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디 개뿐이랴. 나로 하여 죽어간 것들의 혼을,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혼을 담았던 육신을 씹었던 죄업으로 지글지글 타는 아스팔트에 늙고 쉰 소리를 내뱉으며 허연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김광기 시인 / 붉은 햇무리
오후의 중턱에 붉은 해가 걸렸다. 사막을 건너 여기까지 끈질기게 날아와서 이렇게 뿌연 황색먼지를 날리는 것을 보면 대륙의 바람이란 게 참 무섭기도 하다. 저것들이 떼거지로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하늘을 짓이기면서 시야마저 가린다. 남쪽 어디인가에서는 동색의 식견으로 싹쓸이를 해버린다는 얘기도 있다. 오늘처럼 안개까지 끼여 황갈색 먼지가 움직이지도 않는 날에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닌 내 눈앞의 지경이 된다. 다수결의 힘, 붉은 햇무리처럼 조용히 정국 경색의 무리를 짓는 그들은 국민이 선출한 힘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법이 되고 우리 하늘의 붉은 해가 된다. 그리고 오후 중턱에 뜨기만 하는 날에도 오늘처럼 목구멍이 탁탁 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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