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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령 시인 /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난파선은 난파선 속에 뒤집혀 있다 깃발이, 갑판이, 선미가 부서졌다 아니 실제론 뼈댄 안 부서졌다 해일에 부딪쳤고 태풍에 부딪쳤다 그것들은 부딪침으로 섞인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지금은 멀미 중이다 난파선이 나를 껴안으려 한다 난파선이 쏟아내고 있다 방향키도, 서랍도, 포크도, 변기도 꾸역꾸역 쏟아낸다 나온 것들이 서로 섞여 흐른다 너는 흐르지 못했다 아니 실제론 너는 쏟아내지 못했다 그 이름이 바다를 안는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해파리도 해초도 흔들림이 없다 다만 자갈벌엔 구름이 있다 햇살도 자잘하다 바라보면 바다는 여전히 투명하다 힘차다 뱃전에 앉은 바다새가 바다를 바라보고 그 옆 나는 구토를 하고 있다 두통이 자갈벌에 처박힌다 파도 소린 진행이다 여름 가을 겨울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얀 소리가 부서진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바다와 별거 중이다 부서져 나간 글자, 흔적이 없다 폭우에 뜯겨나간 이름, 보고싶다 난파선 뒤에서 바다를 당기며 오른쪽으로 몸 기울어진 수평을 맞춘다 해일과 태풍이 무수한 소리를 숨기는 곳 짠 내음의 바다가 반짝 후미에서 빛났다 그 위 작은새 한 마리 깃을 내렸다 민들레 홑씨 둥글게 부풀어 날자 난파선은 난파선이 아니다 난파선 앞에서 난 파산하고 있다 바람을 들고 나는 석양에 기대 난파선에서 속을 푼다 조개껍질 몇 개가 통장 속으로 들어가 박힌다 앉은뱅이 파편 조각 하나가 열 번째 바다로 가고 있다 물결이 지느러미가 된다 누구의 바다 깊은 곳에서
2015년 전북도민일보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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