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송 시인 / 풀씨창고 쉭쉭
멧돼지 한 마리 그 커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 산기슭이 들어 있다
노루발, 뻐국새,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벌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
멀리 가고 싶은 풀씨들은 멧돼지 등에 올라타면 된다
제 몸에 눈 녹은 묵은 봄이 가려워 멧돼지는 부르르 온몸을 털어낼 터 씨앗들은 직파방식으로 파종될 것이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섬에는 국제종자보관창고가 있다 먼 훗날의 구호(救護)를 위해 멧돼지 한 마리 그 쉭쉭거리는 씨앗창고를 기르고 싶다
이 산과 저 산 이쪽 풀밭과 저쪽 풀밭이라는 말 다 멧돼지의 등짝에서 떨어진 말일 것이다 그러니 너나들이로 섞이는 산 번지는 초록들은 멧돼지의 숨결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다
멧돼지 꼬리에서 반딧불이 날아오르고 꺼칠한 오해 속에서도 극지에서도 풀씨들이 움튼다 2020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최금진 시인 / 커피의 신 외 1편 (0) | 2021.07.28 |
|---|---|
| 김대봉 시인 / 내 고고학의 한때 외 1편 (0) | 2021.07.28 |
| 김참 시인 / 거울 속으로 들어가다 외 3편 (0) | 2021.07.28 |
| 이정주 시인 / 직육면체 외 4편 (0) | 2021.07.28 |
| 문세정 시인 / 산동네 야경은 포구로 변한다 외 3편 (0) | 2021.07.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