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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한옥 시인 / 오월의 메타포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9.

손한옥 시인 / 오월의 메타포

 

 

 잠이 오지 않는 밤

 아카시아꽃 피지 않았는데

 꽃냄새 진동한다 향기 따라 가보니

 

  비녀 꽂은 어머니 내 동생 욱이 안고 찐감자 껍질 벗기고 있는 오래된 일기장 부근이다 미끌한 돌멩이 들면 청록색 고동이 입을 오므리는 수통미 부근이다 살색 긴 양말로 내복을 둘둘 말아 넣은 남루한 치마 입은 봄은 왜 그리도 산란한지 보리밭은 왜 그리도 일렁이던지 종횡무진 달리던 오월 부근이다

 

  뚤뚤이 감나무 아래 오줌추무리 향해 머슴아처럼 서서 오줌 누던 나의 생가 부근이다 앉으나 서나 웃거나 울거나 가장 많이 함께 살아, 죽어서도 함께 살아 쓸쓸하지 않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언니 부근이다 장기 기증으로 보관된 두견새 오빠처럼 고기 잡던 통발이 아직도 걸려 있는 오빠의 침침한 헛간 부근이다

 

  꿈길에도 푸른 미리벌 동녘 단장면 미촌리 사촌구미 부근 씨 뿌리 듯 열 평짜리 박달산 부근 땅 따먹는다 바람 부는 오월 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부근에 거친 열 손가락 마디마디 지질게 일어나고 새앙쥐 한 마리 발가락을 건드린다.

 

시집 『얼음 강을 건너온 미나리체』(달아실, 2021) 중에서

 

 


 

손한옥 시인

2002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2016년 《한국미소문학》동시 당선. 시집으로 『목화꽃 위에 지던 꽃』,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 『13월 바람』, 『그렇다고 어머니를 소파에 앉혀 놓을 수는 없잖아요』,『얼음 강을 건너온 미나리체』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