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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한옥 시인 / 밀양 1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30.

손한옥 시인 / 밀양 1

 

 

 긴늪 숲을 지나 다원벌을 지나 금곡다리를 지나 애장들겅을 지나 수통미를 지나 양달뜰을 지나 상엿집을 지나 단장면 미촌리 사촌 보리포구 당산나무 숲을 지나면 나의 생가 나온다

 

새봄에 오래된 봄처럼 보았다 백 년 늙은 감나무 연둣빛 새순 꼬추 달린 머슴아와 놀던 여섯 살 앉아 있다

 

여린 듯 거칠고 아리고 몹쓸 시

내 피를 돌고 돌아 불감당인 말들

수통미에서 이따리목까지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무진한 시 종자들

고종감 반시감 뚤뚤이감 동이감 붉디붉게 익어가는

 

 


 

 

손한옥 시인 / 밀양 2

 

 

 위암 걸리신 아버지와 우리는 고향인 단장면 미촌리 구미로 이사 왔다

 

시골 아이들은 빨간 모자 달린 옷을 입고 부산에서 전학 온 내가 우상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마을 곳곳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조심하라고

귀신이 있는 곳까지 알려주었다 귀신은 어둡고 컴컴한 곳 가마니 드리워진 변소나 오래된 바위거나 고목 아래 있다 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귀신을 나는 믿고 지내며 조심조심 살았다

 

바람과 구름과 진달래 감나무와 밤나무 탱가리와 꺽두구 쑥과 소나무 사나운 태풍과 붉은 홍수 구릉논과 양달뜰과 이따리목과 칠탄정 피래미와 버들피리 풍개와 대꽃 참외와 포도 살구꽃과 가지 당국화와 우물 아버지의 임종과 지붕 위의 흰 옷 짚으로 만든 머리띠와 대나무 지팡이 까마귀와 까치 새끼줄 감긴 빈소와 곡소리 엄마와 언니와 내 동생 욱이 사무치는 그 땅 봄 여름 가을 겨울 꿈속에서도 찬란한 땅 밀양 내 시종자의 고향

 

 


 

손한옥 시인

2002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2016년 《한국미소문학》동시 당선. 시집으로 『목화꽃 위에 지던 꽃』,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 『13월 바람』, 『그렇다고 어머니를 소파에 앉혀 놓을 수는 없잖아요』,『얼음 강을 건너온 미나리체』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