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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미야 시인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

류미야 시인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지난 생

아마도 난 북재비였는지 몰라

눈시울 붉게 젖은 노을을 등에 업고

꽃 지는 이산 저산을

넘던 그 시름애비

 

어쩌면 그 손끝 뒤채던 북일지 몰라

그렁그렁 눈물굽이 무두질로 마르고

소슬히 닫아건 한 채

울음집인지 몰라

 

그렇게 가슴 두드려 텅텅 울고

텅텅 비워

가시울 묵정밭 지나 산머리에 이르러는

마침내 휘이요ㅡ부르는

휘파람 된지 몰라

 

- 『화중련』, 2020, 상반기호

 

 


 

 

류미야 시인 / 목격자

 

 

나라님이 바뀌고 새 길 수태 났어도

그는 한자리서 죽은 듯이 살았다

흙먼지 이는 땅에는 머리를 조아리며

 

학문은 전무하나 천문을 헤아리니

갈급한 마음으로 하늘 향해 기도하며

시간도, 살아도 모두 속으로만 새겼다

 

한 해는

사랑에 목멘 한 청년이 흐느끼며

새벽 산 오르는 걸 지켜보기도 했는데,

애타는 손사랫짓을 끝내 못 본 듯했다

 

가장 오래 살아남아

가장 오래 아파온 자,

그늘 많은 얼굴로 이곳 어귀를 지키는

그이를 동리 사람들은

서낭이라 부른다

 

- 『서정과현실』, 2020, 하반기호

 

 


 

 

류미야 시인 / 몽상가 류보柳甫 씨의 일일

 

 

무언가 소멸하고 무언가는 살아오는

이 시각, 빛과 어둠은 쪼개지며 붙는다

한시에 생겨나고도 두 몸인 일란성처럼

 

세 시와 네 시 사이

네 시 다섯 시 사이

자작나무 숲 어디쯤 시인은 태어나고

흰 잠의 밑바닥에다 숱한 꿈을 묻는다

 

저를 태운 재로 쓴 자작시를 읊으며

비밀의 안뜰에서 홀로 웃다 울다가

한낮의 현기眩氣 속으로 훅 빨려든

순간,

 

제 몸 사라지는 꿈을 뜬눈으로 꾸면서 대로를 질주하는

닳아지는 살들*이 백주의 교차로에서 연신 긋는 십자 성호

낮의 광장에서는 소음만 통음되므로

사람들의 마음은 바스락대지 않는다

(입술을 달싹여 보지만 소리는 나지 않고)

 

깨진 보도블록 위 날개 찢긴

나비 하나

실바람 한 자락이 밀어 올리는 동안

하늘로 떨어지는 꿈 같은

불면의 밤이 온다

  

- 『시와소금』, 2020, 가을호

 

 


 

류미야 시인

2015년 월간 《유심》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눈먼 말의 해변』이 있음. 공간시낭독회문학상 등 수상.  2019년 올해의시조집상, 2020년 중앙시조신인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