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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야 시인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지난 생 아마도 난 북재비였는지 몰라 눈시울 붉게 젖은 노을을 등에 업고 꽃 지는 이산 저산을 넘던 그 시름애비
어쩌면 그 손끝 뒤채던 북일지 몰라 그렁그렁 눈물굽이 무두질로 마르고 소슬히 닫아건 한 채 울음집인지 몰라
그렇게 가슴 두드려 텅텅 울고 텅텅 비워 가시울 묵정밭 지나 산머리에 이르러는 마침내 휘이요ㅡ부르는 휘파람 된지 몰라
- 『화중련』, 2020, 상반기호
류미야 시인 / 목격자
나라님이 바뀌고 새 길 수태 났어도 그는 한자리서 죽은 듯이 살았다 흙먼지 이는 땅에는 머리를 조아리며
학문은 전무하나 천문을 헤아리니 갈급한 마음으로 하늘 향해 기도하며 시간도, 살아도 모두 속으로만 새겼다
한 해는 사랑에 목멘 한 청년이 흐느끼며 새벽 산 오르는 걸 지켜보기도 했는데, 애타는 손사랫짓을 끝내 못 본 듯했다
가장 오래 살아남아 가장 오래 아파온 자, 그늘 많은 얼굴로 이곳 어귀를 지키는 그이를 동리 사람들은 서낭이라 부른다
- 『서정과현실』, 2020, 하반기호
류미야 시인 / 몽상가 류보柳甫 씨의 일일
무언가 소멸하고 무언가는 살아오는 이 시각, 빛과 어둠은 쪼개지며 붙는다 한시에 생겨나고도 두 몸인 일란성처럼
세 시와 네 시 사이 네 시 다섯 시 사이 자작나무 숲 어디쯤 시인은 태어나고 흰 잠의 밑바닥에다 숱한 꿈을 묻는다
저를 태운 재로 쓴 자작시를 읊으며 비밀의 안뜰에서 홀로 웃다 울다가 한낮의 현기眩氣 속으로 훅 빨려든 순간,
제 몸 사라지는 꿈을 뜬눈으로 꾸면서 대로를 질주하는 닳아지는 살들*이 백주의 교차로에서 연신 긋는 십자 성호 낮의 광장에서는 소음만 통음되므로 사람들의 마음은 바스락대지 않는다 (입술을 달싹여 보지만 소리는 나지 않고)
깨진 보도블록 위 날개 찢긴 나비 하나 실바람 한 자락이 밀어 올리는 동안 하늘로 떨어지는 꿈 같은 불면의 밤이 온다
- 『시와소금』, 202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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