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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희 시인 / 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
축구공을 꿰매느라 노예처럼 일하는 아이들, 아쿠아리움 속 우리도 다를 바 없다
신(神) 지핀 순간 내가 너를 사랑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문지기를 노려보는 것은 목숨을 거는 도전
뜨는 거야, 텅 빈 가짜 벌통은 걷어 차버려 담뱃불로 구멍 난 소파 틈새 털 짐승이 뛰쳐나오고 더러운 침대에서 신음하던 물이 단칼에 쏟아져 나올 때
멀고 먼 약속의 활주로는 지루해 폭우를 헤치고 힘차게 도는 프로펠러 따다다다 헬리콥터가 수직으로 달아오른다
늪이 악어의 수만큼 있는 마을 이마에 온통 피 칠을 한 인디언 입에서 코에서 연기가 뿜어 나온다 짙푸른 숲이 채찍을 휘두르는 지금 뜨거운 접목의 나무 수액은 황홀하게 발효중이다
주린 배를 채우러 가자 악어야 아마존으로 가자
배성희 시인 / 토파즈
고대(古代)의 홍해 어디쯤 안개에 싸인 섬 하나 있어 하늘색 황색 구슬로 영롱하다 어두울수록 빛나는 결정체 목에 걸고 다니면 밤길도 두렵지 않아 왼쪽 가슴에 늘어뜨리면 악마도 피할 수 있어 나의 탄생 보석 갈아서 포도주에 섞어 마시면 뼈저린불면사람에데인화상치명적인출혈도멎게하는 토파즈의 힘, 달이 차오르고 기우는 리듬에 따라 생겼다는데 겨울사막으로 나를 보낸, 전갈의 별자리 적인지동지인지알수없는내몸안팎의전갈떼와섞여 모래알에 서린 독기 꾸욱꾹 밟고 간다 붉게 물든 바다, 그 섬 캐먹고 싶다 아플 때마다 토파즈는 나의 힘
배성희 시인 / 프리허그
따뜻하지 않아 카마수트라 포즈에도, 바다는 겨울바다
떠내려간 약속 가라앉은 시간에 갈퀴가 솟구쳐 깊은 바닥 모래까지 끌고 와 부딪친다 살고 싶냐 죽고 싶냐 파도의 추궁에 버티는 방파제, 마지막 힘으로
테트라포드에 서서 천 개의 팔을 벌린다, 우우 수평선부터 몰려오는 눈구름이 손끝에 닿는다 눈송이 한 움큼 받아먹으면 내 안에 다시 피어나 먹을수록 많아지는 하얀 꽃잎
화장(火葬)한 우주의 뼛가루는 폭설로 다시 살아 파도든 방파제든 무차별 깃드는 정령 걸어간다, 눈보라는 내 어깨를 감싸 안고 바다로 나의 먼 바다로
배성희 시인 / 속도의 방정식
버려진 것들은 개가 되었다 산길에 개떼가 돌아다니는 요즘 허리아래 감정을 지웠다 뇌를 비우는 것
야생으로 유턴 개는 어느 정도 뇌를 비우기로 했다 숲은 위태로운 자유 일그러진 파라다이스
내 안에 썩어가는 양파 자루를 내다버릴 때 틈새로 흐르는 까만 액체를 조심해야한다 그보다 지독한 냄새가 또 있을까 애견충견을 내다버린 인간의 시즙처럼
미안해, 보신탕집에서 반쯤 시들어 접시 밖으로 내가 버린 상추 한 장을 다시 집어 들고 ‘상추야 미안해’하던 사람 그의 특수부위를 보쌈 해먹는 입들은 요즘 몇 개일까, 흐음, 이런 호기심에선 악취가 난다
내가 버린 기저귀들이 분해되려면 100년이 걸리고 세상에는 미안한 일투성이 곤충이 들어간 호박 화석이 만들어지는 속도 水晶 속에 미세한 균열이 자라는 속도 버려진 상추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지우는 속도
야생으로 유턴, 눈빛이 사나운 개떼들이 산길을 돌아다닌다
류마티스의 비밀은 임파선에 있다 임파선의 과잉기억효과는 고질병을 유발한다 개를 버리고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주인들은 자고 싶을 때 류마티스 약을 먹어야 한다 오래오래 아픈 다리가 잘 뻗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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