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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마선숙 시인 / 이끄시는 대로(아! 해당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

마선숙 시인 / 이끄시는 대로(아! 해당화)

 

 

저를 던지니

바다가 출렁출렁 검붉게 울고 있네요

당신의 당뇨와 신경통을 위해

생명을 뿌리째 켔지요

저를 사골처럼 고아 사슴피처럼 후루룩

마시고 싶은가요

목숨이 너덜너덜 떨어졌어도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향기로 바다를 덮겠습니다

저의 꽃말이 이끄시는 대로인 것을 아시나요

모든 비극도 벙어리처럼 묵묵히 삼키겠습니다

저는 전생에 해마다 된장 고추장을 열 항아리 담그던

칠대 종손 맏며느리일지도 모르고

굴 따다 갯벌이 된 당신 어머니 혼이거나

섬에 나가 실종된 어부 아내의 그리움 혹은

철새들이 나침반처럼 심어 놓은

이정표일지도 모르지만

당신 뱃속으로 들어가 검붉게 새로이 피고 싶습니다

물 대신 눈물을 끌어올려

꽃대에 실하게 꽃망울을 키우겠어요

바다가 멀어지네요

울음꽃도 멀어지네요

서서히 점처럼

 

-『저녁, 십 분 전 여덟 시』, 시와문화, 2018.

 

 


 

 

마선숙 시인 / 저녁, 십분 전 여덟시

 

 

저녁상 물리고

설거지 마치고

나를 주름처럼 포개 넣었던 앞치마를 벗는다

 

찬밥처럼 속절없이 남루해

바다를 불러들인다

선유도 증도 우도

 

훼손당한 모욕들을 숨기며

푸른 색이 멍같은 바다에

범선 하나 띄운다

 

나를 담아

물살을 헤치고 망망대해로 나간다

배 기둥에 흔들리는 파문을 붙들어 매고

 

수평선

갯벌

선창가 술집의 노래들 가까워졌다 멀어진다

 

더 깊이 노를 젓는다

나뭇잎처럼 둥둥 표류한다

 

하염없다

 

시집『저녁 여덟시 십분 전』2018. 시와문화

 

 


 

마선숙 시인.소설가

서울 출생. 2013년 《시와 문화》 시 당선. 2014년 《불교문예》 소설 당선. 저서로는 시집 『저녁, 십 분 전, 여덟 시』, 소설집  『몸이 먼저 먼 곳으로 갔다』이 있음. 제 10회 서울 문화투데이 문학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