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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홍신선 시인 / 사람이 사람에게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

홍신선 시인 / 사람이 사람에게

 

 

2월의 덕소 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 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누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홍신선 시인 / 대선(大選)이 있는 겨울

 

 

그렇게 힘들여 올라선

평생 발품을 쏟은 정상은 어떤 곳일까?

오지에서도 권력의 허무함을 묵상한다.

 

권력의 정상에서

단칼에 베인 수급처럼 급강하는 것

한 달음질로 떨어지는 것

그게 권력 아닌가??

 

몰락 뒤에도

추문 한 편 없는 생은 얼마나 쓸쓸 허전한가?

 

* 추문(推問) : 어떤 사실을 자세히 캐며 꾸짖어 묻는 것.

 

 


 

 

홍신선 시인 / 막돌도 집이 있다?

 

 

주워 모은 잡석들로 터앝 배수로 돌담을 쌓는다. 막 생긴 놈일수록 이 틈새 저 틈새에 맞춰본다. 이렇게 저렇게지만 뜻없이 나뒹굴던 돌멩이가 틈새를 제집인 듯 척척 개인으로 들어가 앉는 순간이 있다. 존재하는 것치고 쓸모없는 건 없다는 거지 그렇게 한번 자리 찾아 앉은 놈은 제 자리에서 요지부동 끄덕도 않는다

 

      사람도 누구나 어디인가 제 있을 자리에 가 박혀

      오 돌담처럼 견고한 70억 이 세상을 이룬다.

 

[시인동네](2020)

 

 


 

 

홍신선 시인 / 분수(噴水)

 

 

한줄기 큰 거미가 되어

휘멀건 몸둥이를 뒤척인다.

噴水여

솟아 떠오른 그 頂上에

투명한 여덟개의 다리로

너는 버티고 서서

퍼올리나 그 國力을 퍼올리고있으나

더러 통이 큰 자루를 휘둘러온

바람에 휩싸여 가고

허공에는

끊임없이 휘젓는

네 허무의 흰 다리가 돋아나고 있다.

 

 


 

 

홍신선 시인 / 태풍

 

 

大陸이나 南支那海로 빠지지 못하고

남해안 어디로

상륙했다고 하더니

이 외진 산골짝 논구석에 와

제 모든 것 버리고 쓰러졌구나

 

성내어 헝클린 뻣뻣한 머리칼들

물구덩이에 힘없이 풀려있고

다문 입 지워져

벌어진 틈에

생전에 못한 뉘우친 말들

흘러나오고

 

그 옆에는 영문도 모른 채 패여나간 억울하기만 한

둔덕이 하나

屍身처럼

호흡 끊고 가까스로 몸 부지한 채

하는 수 없지 하는 수 없지.........

 

이 나라 가을날

화를 면한 풀들

한 옆에 질린 채 몰려서 진저리친다

놋숟가락만한 뼈 퉁그러진

바싹 마른 무릎께에

핏물 든 햇볕 묻힌 채

몸서리친다.

 

 


 

 

홍신선 시인 / 달맞이꽃

 

 

질까 말까

속으로 망서리는 달맞이꽃 망설이는 소리

또 그 곁에서

속으로 필까 말까 머뭇대는 달맞이꽃 머뭇대는 소리

 

망설이는 순간의 삶의 總體性

머뭇대는 순간의 立體性

 

밖으로 밖으로 모두 樂觀論만 쳐다보는

이 시대에

골돌히 內面만 무더듬고 섰는

고개숙인 꽃의

목덜미

 

오늘 그 뿌연 목덜미에

남김없이 주어진

휘영청한

달밤!

 

 


 

홍신선(洪申善) 시인

1944년 경기 화성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65년 《시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서벽당집』(1973), 『겨울섬』(1979) , 『삶, 거듭 살아도』(1981), 『우리 이웃 사람들』(1984), 『다시 故鄕에서』(1990), 『다시 黃砂바람 속에서』(1996), 『자화상을 위하여』(2002), 『홍신선 전집』(2004) ,『우연을 점찍다』(2009)가 있고, 논문으로  『한국근대문학이론 연구』, 『우리 문학의 논쟁사』, 『현실과 언어』, 『상상력과 현실』등이 있음. 서울예대 강사, 안동대, 수원대 교수, 동국문학인회장 역임. 현재 동국대 문창과 교수로 재임. 동국문학상, 경기도문화상(1989), 녹원문학상(1982),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2002)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