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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선 시인 / 사람이 사람에게
2월의 덕소 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 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누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홍신선 시인 / 대선(大選)이 있는 겨울
그렇게 힘들여 올라선 평생 발품을 쏟은 정상은 어떤 곳일까? 오지에서도 권력의 허무함을 묵상한다.
권력의 정상에서 단칼에 베인 수급처럼 급강하는 것 한 달음질로 떨어지는 것 그게 권력 아닌가??
몰락 뒤에도 추문 한 편 없는 생은 얼마나 쓸쓸 허전한가?
* 추문(推問) : 어떤 사실을 자세히 캐며 꾸짖어 묻는 것.
홍신선 시인 / 막돌도 집이 있다?
주워 모은 잡석들로 터앝 배수로 돌담을 쌓는다. 막 생긴 놈일수록 이 틈새 저 틈새에 맞춰본다. 이렇게 저렇게지만 뜻없이 나뒹굴던 돌멩이가 틈새를 제집인 듯 척척 개인으로 들어가 앉는 순간이 있다. 존재하는 것치고 쓸모없는 건 없다는 거지 그렇게 한번 자리 찾아 앉은 놈은 제 자리에서 요지부동 끄덕도 않는다
사람도 누구나 어디인가 제 있을 자리에 가 박혀 오 돌담처럼 견고한 70억 이 세상을 이룬다.
[시인동네](2020)
홍신선 시인 / 분수(噴水)
한줄기 큰 거미가 되어 휘멀건 몸둥이를 뒤척인다. 噴水여 솟아 떠오른 그 頂上에 투명한 여덟개의 다리로 너는 버티고 서서 퍼올리나 그 國力을 퍼올리고있으나 더러 통이 큰 자루를 휘둘러온 바람에 휩싸여 가고 허공에는 끊임없이 휘젓는 네 허무의 흰 다리가 돋아나고 있다.
홍신선 시인 / 태풍
大陸이나 南支那海로 빠지지 못하고 남해안 어디로 상륙했다고 하더니 이 외진 산골짝 논구석에 와 제 모든 것 버리고 쓰러졌구나
성내어 헝클린 뻣뻣한 머리칼들 물구덩이에 힘없이 풀려있고 다문 입 지워져 벌어진 틈에 생전에 못한 뉘우친 말들 흘러나오고
그 옆에는 영문도 모른 채 패여나간 억울하기만 한 둔덕이 하나 屍身처럼 호흡 끊고 가까스로 몸 부지한 채 하는 수 없지 하는 수 없지.........
이 나라 가을날 화를 면한 풀들 한 옆에 질린 채 몰려서 진저리친다 놋숟가락만한 뼈 퉁그러진 바싹 마른 무릎께에 핏물 든 햇볕 묻힌 채 몸서리친다.
홍신선 시인 / 달맞이꽃
질까 말까 속으로 망서리는 달맞이꽃 망설이는 소리 또 그 곁에서 속으로 필까 말까 머뭇대는 달맞이꽃 머뭇대는 소리
망설이는 순간의 삶의 總體性 머뭇대는 순간의 立體性
밖으로 밖으로 모두 樂觀論만 쳐다보는 이 시대에 골돌히 內面만 무더듬고 섰는 고개숙인 꽃의 목덜미
오늘 그 뿌연 목덜미에 남김없이 주어진 휘영청한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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