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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광기 시인 / 자본주의의 이빨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

김광기 시인 / 자본주의의 이빨

 

 

들쭉날쭉한 도시의 빌딩들

치열한 먹이사슬의 전투 속에서

날카롭게 크는 이빨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가지 번식하는 식성은

잇몸의 아래를 뚫고서도 건재함을 자랑한다.

편향으로 뻗은 이빨들의 기능성 또한

상대성 이론을 무색하게 한지 오래이다.

강력한 소화액까지 분출되는 공격력은

작은 이빨의 뿌리까지도 녹인다.

무위, 무소유의 이념으로 무장한 잇몸들이

강성의 이빨들에게 경배를 올린다.

사소한 공격성만으로 주변을 넓히고 있던 몸신들,

무장해제의 명을 받으면

바닥까지 깨물리는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잇몸이 자라 언젠가는 이빨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이빨들이 꾸며놓은

자본주의의 허구일 뿐이다.

고차원 자성섭생의 원리로 움직이는

이빨들의 먹이가 될 뿐이다.

 

 


 

 

김광기 시인 / 에피스테메, 텍스트 미학

 

 

숨구멍을 열고 오밀조밀 몰려있는 개미집 같고

곧은 씨알들이 촘촘히 박힌 해바라기 같기도 하지만

선험의 숨결이 응축된 기표와 기의의 횡단들,

무수한 기운들이 스멀스멀 피어나 세상으로 퍼진다.

소리로 키워내는 순간 의미는 분해되는 듯하지만

가슴에 다시 고여서 탄력을 갖는 패러다임,

읽을 때마다 의미는 달라진다. 뜻은 그대로이더라도

좌표는 달라진다. 삶의 경륜으로 읽히는 텍스트,

벽에 꽂힌 무수한 텍스트들, 갖가지의 무늬로 아침을 밝히고

때로는 깨알처럼 때로는 고딕폰트 문양 같은 높이로

시작을 알린다. 다시 텍스트만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횡렬에 따르지 않고 아래를 내려 밟는다.

그렇게 오르려고만 했던 계단을 내려가기만 할 때

중심을 지탱하던 관절의 삐걱거림을 느끼며

노쇠한 무릎 때문에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지나온 삶이 아니면

도저히 따라 읽을 수 없는 시간에 한 걸음씩 내려가는

텍스트 계단, 무수히 밟히는 시니피앙 시니피에들.

 

 


 

 

김광기 시인 / 고양이의 푸른 눈빛처럼

 

 

한 밤중의 고층빌딩에 불빛 하나 있다.

북적대던 인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커먼 몸체에서

촛불 같은 불빛 하나 반짝거리고 있다.

요즘의 어둠은 어둠 같지 않게 건물의 윤곽을 밝힌다.

검은빛이 광을 내며 어둠이 어둠을 지킨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새까만 어둠이다.

원형을 잘 보존해놓은 공룡의 뼈 같은 빌딩,

마치 한낮의 유언이라도 흐르듯

캄캄한 냉기가 감돌고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떠난 곳은 더욱 스산하다.

언제 사람들이 북적거렸을까 싶은 곳에서

고양이 눈빛처럼 깜빡이는 불빛 하나 비추고 있다.

빌딩의 혈관을 적혈구처럼 흐르던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갔음직한 사람들 몇은 보이지 않는다.

식은 핏물 같은 서늘한 어둠에 불빛 하나 켜 놓고

시커먼 그림자를 감춘 채

빌딩 구석에서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내고 있다.

 

 


 

김광기 시인

1959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석사, 아주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작품 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등과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학습서 『글쓰기의 전략과 논술』 등이 있음. 1998년 수원예술대상 및 2011년 한국시학상 수상. 현재 계간 『시산맥』 편집위원, 아주대 등 출강.학점은행제 <한국보육교사교육원> 운영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