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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향옥 시인 / 층층층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3.

조향옥 시인 / 층층층

 

 

대평에 출토한 청동기문화는 없다

 

인류가 최초 합금문자로 발전시킨 흔적은

구리의 색과 깨지기 쉬운 청소년기의 단단함을

알맞은 비율로 형을 뜨고 날을 갈아

날카로운 핸드폰으로 무우밭 아래

층을 내는 것이었다

 

7층 현대 밭 경작층

6층 홍수 범람 모래 퇴적층

5층 삼국시대 아이스크림 먹는 층

4층 홍수 범람 후 종이컵 모이는 층

3층 청동기시대 동영상 강의 듣는 층

2층 청동기시대 계단에 앉아 만화 보는 층

1층 기반퇴적 개미집 찌그러지는 깡통 층

 

주석 17%의 검을 빼들고 문자를 날린다

(짜아식, 몇 층이야! 빨리 안 내려오고!)

 

불법을 자행하는 반칙의 나라에는

땅 위에 묘석을 깔고 베드신을 즐기던

입술 튼 붉은 항아리가 있었고

알몸 투시기로 더 똑똑해진 과거를 살펴보면

돌 그물추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던 물고기가 있었고

숫돌에 돌칼을 쓱쓱 갈아 나비를 잡던 사나이도 있었다

 

환각제가 필요한 청동기 고인돌층에서

사냥돌 하나 날려 새를 잡았다는 문자메시지

난다

(안돼! 지금 엄마랑 무우 뽑는 중이야)

 

- 진주 청동기문화박물관에서 -

 

 


 

 

조향옥 시인 / 종소리

 

 

알람이 울었다

 

백김치가 좋아? 총각김치가 좋아?

난, 노틀담 곱추가 좋아

난, 용돈이 좋아

역시 집시처녀를 사랑하는군

그 세계는 고소해

손가락으로 슬쩍 찍어 쪽 빨아 봐

햐~ 뼈까지 녹아야 제 맛인 걸

그게 원래 종소리야

귀를 틀어막아도 구석구석 울려 퍼지는

고소한 젓갈의 세계야

 

백김치가 좋아? 총각김치가 좋아?

난, 집시처녀가 좋아

흠, 역시 꼬리하군

집시처녀 치마폭에 척척 안기는 저 꼴 좀 봐

어쭈~ 통 속에 서로 안고 척 눕네

귀를 틀어막아도 구석구석 퍼지는 건 우리집 종소리야

싱거우면 종을 쳐, 더 세게 종을 쳐,

제발 치마 폭을 찢지 마

그만,

집시가 잠들었어 콰지모도 곱추도 잠 들었어

 

쉿, 조용~

 

 


 

 

조향옥 시인 / 통풍(痛風)

 

 

나는

고운사* 석탑이다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이고

나한전에서 몹시 앓다가 나온

순발력 있는 바람이다

 

오월 오동나무 아래

벙거지 벗어놓고 앉아

흔들리는 햇살에게 진료 받는

천년이 푸른 주름이다

 

바싹 마른 갈빗대 사이로

바람이 횡 지나가도

사랑이야기 들어주는 민달팽이 한 마리 있어

좌대를 더듬거리는 희열이다

 

나는

발가락을 타고 다니는 통증을

하느님이라 부르고

꽃이라 부르고

뼈와 뼈 사이로 빠져 나갔다가

곧 돌아오는 부처님을

옛사랑이라 부르는 오래된 바람이다

 

*고운사 :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름도 외로운 집)

 

 


 

 

조향옥 시인

1956년 진주 출생, 경남 진주에서 출생. 2011년《시와 경계》로 등단. 시집으로 『훔친달』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