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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선 시인 / 옆구리 증후군
손가락을 때렸다 매일 하는 일인데 못은 이미 달아나고 의자는 미완성인데 날아 온 생각 때문에 한눈팔고 말았다 상처 많은 나무로 사연 하나 맞추어 간다 원목의자만 고집하는 팔순의 아버지에게 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어머니 보내고 생의 척추 무너진 후 기우뚱 옆구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
* 2016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조경선 시인 / 배웅
아버지 묻고 내려가는데 헛기침 들린다 돌아보니 노인 하나 웅크리고 앉아서 맨살의 마른 알몸을 붉은 노을에 씻고 있다
임종을 혼자 지켰다는 듯 귀신새가 운다 유언을 토했을 땐 아무도 없었다 쏟아낸 암 덩어리 움켜쥐고 한 사내 저물었다
저 북쪽 어딘가에서 봄꽃이 다시 피고 30대의 모습 그대로 어머니가 손짓한다 먼 곳이 반세기 만에 가까운 곳 되려한다
못난 아들 발걸음이 팍팍하게 무너진다 아는지 모르는지 들꽃의 처연이 깊다 그 어떤 설움으로도 배웅이 될 수 없는데,
* 2014 천강문학상 수상작
조경선 시인 / 목력(木歷)
자르기 전 쓰다듬으며 나무를 달랜다 생의 방향 살핀 후 누울 자리 마련한다 첫 날刀은 이파리마저 놀라지 않게 한다
나이테 한 줄 슬금슬금 잘려 나가니 뱉어낸 밥 색깔이 뼛가루처럼 선명하다 100년의 단단한 숨소리 한순간에 무너지고
한없이 차오르던 숨길은 물길이었을까 안쪽으로 파고들면 내력은 촘촘해지고 울음을 간직한 옹이가 더욱 단단해진다
벌목은 베는 게 아니라 만나는 거다 커다란 눈동자 되어 밑동이 살아있는 건 최초의 뿌리가 사람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2019년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시집 <목력木歷>으로 수상
조경선 시인 / 폭우
토담집 처마 밑 발자국이 깎여 나간다 거미가 쳐놓은 사다리를 삼켜버리고 바람은 방향을 찾지 못해 문을 후려친다
빗물이 꼬리를 세워 흙의 비밀을 파고들 때 실족한 오른발은 붉은 피를 파먹는다 한 계절 낱낱이 파헤쳐진 헛소문부터 살냄새까지
너는 나에게로 나는 너에게로 그 사이 당신이라는 좌절이 쏟아진다 걸음에 묻어 있던 흙냄새가 허공에서 갈라진다
조경선 시인 / 오랜만에 땅 위에서
오랜만에 땅 위에서 팔굽혀펴기 동작을 한다 어둠까지 다 털어먹고 두 발로 떠돌다가 오늘은 네 발로 나를 그야말로 드는 것이다 닫혔던 코를 바닥에 대고 흙냄새를 맡는다 어금니 물고 일어나 폭삭 흙에 파묻힌다 으랏차 옆을 보아도 앞을 보아도 벽이 없다
시집 <목력木歷> 책만드는 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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