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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혜선 시인 / 숲과 강물 사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4.

정혜선 시인 / 숲과 강물 사이

 

 

숲과 강물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요즘에야 눈치챘습니다

나란히 어울려 잇으면서도

무심한 듯

마음결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쩐지

뜨겁던 지난 여름날엔

강물이 숲에게 바람을 일으켜 주고

지쳐가는 오후 햇살에는

숲이 강물에게 그림자를 들여놓더라니요

 

잠자리 떼가 이따금씩 몰려와

산란 비행을 하는 무렵이면

숲은

머리맡에 붉은 계절 옷 개켜두고

조용히 제 몸을 던져 강물에 녹아듭니다

강물 또 한

말없이 푸른 정을 끌어안고

얕은 물살을 뒤척입니다

 

저리 별스럽잖게 보여도

둘은 열렬한 사이였나 봅니다

 

 


 

 

정혜선 시인 / 철새

 

 

강물이 서서히 몸을 씻는다

반짝이는 햇살, 조각비누 만지작거리며

꽃소식 올라오자

제 무리들은 벌써 떠났는데

청둥오리  서너 쌍이 여운으로 남았다

 

무슨 곡절일까

 

다, 모두 다 떠나도 남겨지는 수가 있다

 

문득 둘레를 짚어본다

어느 결에 나도

떠나지 못해

남아있는 건 아닌지

 

 


 

 

정혜선 시인

경남 진주에서 출생.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2015년 계간 시 전문지 《포엠포엠》 여름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3년 한일대역시선집 『바다꽃이 피었습니다』 출판기념회를 겸해 열린 나고야 한일문학교류회에서 참가시인의 시 일부를 번역. 2013년 10월 일본의 시문학지 《우추시진(宇宙詩人)》 19호에 문태준 시 「바위」 외 4편을 번역 소개, 같은 호에 본인의 시 「메두사호의 뗏목」을 일본어로 게제하며 일본 문학지에 데뷔. 현재 워싱턴에 거주하며 번역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