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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권 시인 / 세공사 김씨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5.

김권 시인 / 세공사 김씨

 

 

세공사 김씨, 해묵은 천식을 뱉는다 우리는 가끔 그의 죽음을 본다 달궈진 불속의 흰 뼈들, 그의 손가락에 붙은 금은 아프다 재개발이 확정된 예지동, 낮의 시간은 금일 때문에 손이 형벌을 받는다 시계속에 칸칸이 앉은 사람들, 우리는 소리없는 부속들 카페인으로 하루를 보낸다 현관문이 열리면 풍경소리에 졸던 초침이 깨어난다 여름을 버틴다 서로 몸이 묶인 체 벽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수도배괸들

 

염산냄새에 민감한 건물이 중병을 앓고 벽에서 흔들리는 쇠붙이들은 붉은 녹을 산란중이다 창밖의 벗나무도 시력을 잃은 봄, 시계방을 기웃 거린다 금이 좋아 예지동을 떠나지 못하는 김씨, 카메라들이 앉았던 자리에 시계들이 해바라기로 피어나고 늦은 오후가 노숙자처럼 재개발지역을 지난다 접근금지령이 내려진 예지동 세공공장 뒷골목, 금거북이들은 유행을 쫒아 사라지고

 

 


 

 

김권 시인 / 안나의 방

 

 

안나는 나보다 열 살이 많아요

나이가 많으면 뭐 어쩌겠어요

 

안나의 방에서 라디오가 노래를 해요

이야기가 새어 나와요 하루 종일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안나는

심심하니까 하루하루

 

토끼가 춤추고 염소는 노래해요

꼴을 먹이니까

안나를 좋아하니까

 

안나의 방을 기웃거려요

깊고 푸른 방에 새겨진

곱은 등자욱이 펴지지 않아요

 

 


 

 

김권 시인 / 유리 물고기

 

 

빛을 지나온 돌은 모두 별이 된다

꿈꾸지 못하는 시간은 어항 속 물고기가 되고

 

나는 물고기

내 눈은 유리로 만들어졌어요

밤마다 창밖을 우러러 봅니다

 

빛에 묻힌 돌은 모두 보석이 된다

빛의 흔적은 물로 지워지지 않아요

 

내 손을 잡아봐!

빛에 물든 몸이 뜨거워

 

창밖을 우러르고 물고기의 말을 배운다

표정을 닮아간다 밤에

나는 몇 마디로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요

 

어항에 물든 빛은 물고기가 된다

 

 


 

김권 시인

전남 장성에서 출생. 2018년 《시와 세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