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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후 시인 / 제라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6.

김경후 시인 / 제라늄

 

 

소식 없이

수식만 늘었습니다

 

불 꺼진 상점가

네가 가리켰던 너무 많은 꽃들

제라늄이야

 

저것도?

아니 저건 아니지

 

씨앗을 심었지만

붉은 꽃잎 한 장 없이

죽었습니다

 

바람도 없는 거리

가로등 켰다 껐다 켰다 껐다

 

나는 방향 없이

달리는 속도를 높입니다

 

너 지금 어디야?

잘 모르겠어

아 죄송합니다, 전화를 잘못 걸었군요

 

흑두루미들 흘러가는 밤

 

소식 없이

수신 없이

 

내가 가리키는 검은 어둠

사라지는 것들의 방향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밤

 

 


 

 

김경후 시인 / 사각지대

 

 

있습니까

보이지 않았습니다

없습니다 있었습니까

 

빗자루 끝으로

귀퉁이 먼지 끌어낸다

햇빛 멈추는 순간

먼지들

빗자루 성단 별가루처럼 떠오른다

 

창밖 자두나무

꽃피기 전

몇 개의 하루가 있었을까

보이지 않았습니다

없습니까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한밤 어둠 속

끼이익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검은 하루가 고양이처럼 지나간다

오늘의 냄새

 

 


 

 

김경후 시인 / 잉어가죽구두

 

 

너덜대는 붉은 가슴지느러미

수억 년 동안 끝나지 않는

오늘이란 비늘

떨어뜨리는

노을

아래

기우뚱

여자는 한쪽 발을 벗은 채

깨진 보도블록 틈에 박힌 구두굽을 잡고 쪼그려 있다

 

 


 

김경후 시인

1971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독문과 졸업. 명지대 문창과 박사과정 수료.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열두 겹의 자정』『오르간, 파이프, 선인장』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