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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근열 시인 / 가만히 몸 기울이면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5.

김근열 시인 / 가만히 몸 기울이면

 

 

아침 출근길에 앞마당

잔디를 살금 밟으면

누군가가 밤새 둥글게 빚어 놓은 이슬

뽀드득 깨지는 소리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만다

아직도 귀가 열려 있었구나

다행이다

손끝이 아리아리한 날

바람이 만져지는 날이 있다

빠르고 민첩한 놈들과 느긋하고

따스한 바람이 내 곁을 지나갈 때

눈 속에도 마음에도 길이 있었구나

다행이다

늘 곁에 있는 것

무심한 것들 느끼고 만지는 게

나의 행복이었던가

이렇게 가만히 귀 기울이면 모두가 시인인 걸

사람들은 세상 그 경계 밖에서

그저 가만히 몸 수긜면 되는 걸

 

 


 

 

김근열 시인 / 그래도 당신을

 

 

지금은 그래도 당신을 그리우는 시간

바닷가 모래 위에 당신의 이름 석자를

남몰래 새겨놓고

그래도 당신의 그 사랑을 그립니다.

해 저문 바닷가에 이렇게 앉아서

밀려왔다 밀려가는 저 물결 속에

그래도 당신의 그 눈매를 그립니다.

저 만큼 날으는 갈매기 날개 위에 못잊을 사연

내 마음 실어 날려 보냈으면

지금은 그래도 당신의 그 가느다란 손짓이 보이고

가슴으로 이렇게 이 바닷가에서

그래도 당신을 부릅니다.

이름마저 가져가버린 당신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김근열 시인 / 절창

 

 

도화지에

빗금을 치는

연필 소리처럼 비가 내립니다

때로는 장중하게

때로는 부슬부슬

힘차고 세밀한 붓 처치를 하듯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나무 이파리에 너불너불

수채화를 그려 갑니다

백주에 호젓이 혼자 보는

문밖에 펼쳐진 풍경화

참으로

칠월의 신록은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언제나 절창입니다

 

 


 

 

김근열 시인 / 발레리나

 

 

발끝을 곧추세워

외발로 턴을 하듯

빙그르르

순풍에 날아오르는

민들레 홀씨 하나

 

 


 

김근열 시인

1966년 충남 공주 출생. 2012년《영남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콜라병속에는 개구리가 산다』가 있음. 경북 포항 거주. 통진문학회 회원 . 김포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