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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기 시인 / 달력
시한부 삶이 못 박혀 있다 무거운 날들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칸칸이 봉인했다 붉게 찍힌 숫자에서 피 냄새가 난다
빨간 7은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같아 도려내니 뒷장은 빨간 4 사법살인 인혁당 사형수들의 늘어진 사지가 보인다 4ㆍ3 과 4ㆍ19 붉은 4에는 화염이 타오르고 피가 고여 있다
까만 4는 문상의 나날들 날마다 검은 리본을 달고 있다 아무 일 없는 날은 얼마 되지 않아 굵은 기호들, 작은 글씨들이 다닥다닥 무언가를 표시하고 있다
무거운 날들이 가볍게 벽에 붙어 있다
시집『신전의 몰락』 中에서ㅡ
양진기 시인 / 냉장고와 어머니
냉장고가 운다 어둠 속에서 낮게 흐느끼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울음을 뚝 그친다 한밤중에만 캄캄하게 우는 냉장고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식들 앞에선 언제나 강했던 어머니 어두운 골방에서 저리도 낮게 흐느끼셨다
슬픔을 동결시킨다 터지는 호곡을 가슴속에 우겨 넣는다 얼어붙은 울음들이 냉동실에 빽빽하다
- 계간 리토피아 겨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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