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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미 시인 / 사막을 찾아서 -영화 나의 산티아고
낮고 음울한 겨울 하늘이 마른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뚝 떨어진 수은주를 등진 채 긴 오르막을 버겁게 걸으며 문득 800킬로나 되는 산티아고 순례 길을 맨발로 걷는 독일 배우 하페를 생각했다 따스한 봄에서 얼음의 도가니 두터운 한겨울까지 변화무쌍한 피레네 산맥을 넘느라 발에 온통 비누거품처럼 난 물집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허름한 잠자리… 그는 왜 화려한 무대와 박수를 버린 채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 사막길을 택한 걸까 꼬박 두 달의 고행 끝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 야고보 성당 광장에 서자 하늘로 뎅그렁 울려 퍼지던 맑은 종소리 기쁨은 고행을 양식으로 하여 자란다고 묵묵히 말해준다 근 삼십 년을 식구들 뒤를 따르며 살았다 아이가 책의 숲에서 헤어 나와 제자리를 찾기까지 마음속에 쌓은 사리탑 하페가 앵무새처럼 대본을 외던 스튜디오를 버리고 홀로 사막길을 걸으며 겉치레를 버리듯 내 안에 감춰진 한 여자를 찾는다 어두워져 가는 숲 사이로 입춘방을 붙이듯 파릇하게 잎을 내는 푸작나무 숨소리가 들린다 긴 동면에서 깬 여자 홀로 미명의 새벽길을 열어간다
주선미 시인 / 어머니와 소나무
어머니의 굽은 허리에는 사립문 밖 소나무가 앉아있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한없이 옆으로만 팔을 뻗은 나뭇가지들
얼마나 많은 응어리를 감추고 살아 왔으면 쇠똥같은 껍질만 저리 거칠게 앉았을까
그녀의 굽은 허리를 볼 때 마다 생각나는 사립문 밖 소나무 한 그루
아픔을 떠받치고 살아왔을 세월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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