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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한옥 시인 / 직설적인 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7.

손한옥 시인 / 직설적인 새

 

 

매화 배꽃 다 보는데

가뭄 든 밭이 다 젖도록 할 말 못할 말 다 쏟았다

 

오두방정 삐쭉새에게 들키고 말았다

조석지변 용심을 내려다보며 쉬지 않고 말한다

삐쭉삐쭉 삐쭉삐쭉

사이좋게 살아라 쇠귀에 경 읽기다

 

늘어진 벚꽃 한 움큼 훑어 던졌다

날아가지 않고 산뽕나무 가지만 촐랑 가소롭다 말한다

고렇게 생긴 맘에 예쁜 시가 나오냐

삐쭉삐쭉 어림없다 삐쭉

 

손목에 힘 들어간 호미촉 뜨겁다

애꿎은 돌 바스러지고

산새 악다구니 악처 입같이 막을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진 것이 남의 흉보는 것이라고

삐쭉새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한나절 내내 삐쭉거린다

껍데기만 멀쩡하다

삐쭉삐쭉 너 잘났다 삐쭉

 

벚꽃 이파리 하나

쑥 이파리 하나

싹싹 비벼 귀 막자

 

 


 

 

손한옥 시인 / 비극과 희극 사이

 

 

 1

 

나는 저 아이를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데 아이는 오직 제 어미와 아비만이 합일이다 함께 사는 건 가족이다 한결로 사랑하는 거다 일러도 아이가 그려놓은 동그라미 바깥은 천길 벼랑

 

 아이는 유년의 내 거울 내가 서 있다 나 닮아서 예쁘고 나 닮아서 밉다란 말 인과가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는 것이 아니더라 시시때때로 어머니 앞에 서는 나 어머니 환생하시면 진상의 그 딸 다시 만나실까 묻는다 그래 수수억 년 지나도 그리하실 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 끈 놓지 않을 거니까 웬수처럼 귀인처럼 나찰처럼 엄마 아버지 오빠 우리 언니 내 동생 욱이 사무치는 이름들 돌아오라 다시 다시,

 

 2

 

 어느 날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 말 할머니 손은 목욕탕에서 나온 것 같아요 깨끗하단 말이구나 했는데 천만에다 물에 불은 듯 늙고 주름진 손에 대한 아이 눈의 기준 내 혐오의 기준 잠긴 문 앞에 와서 문 열라 해도 열지 않는 문 앞에서 기다리는 건 비감

 

 그대로 머물러라 세상에서 사라져도 기억 한 켠 세잎 클로버에 불과할 뿐이니 네잎 클로버를 딴 희열의 기억은 잊으시라 견주거나 노여워 마시라 아이의 사랑이 몇 센티이거나 몇 킬로이거나 재단하지 마시라 아이 마음 그 바탕에 있는 어른은 언제나 자유를 제지하는 봉건자, 저를 거부하고 계관하는 대상이라 여길 것이니 내 유년의 한 켠처럼 만날 때마다 대쪽 같던 지적자 상주할매 혼일지 몰라

 

 3

 

 노여워 말라 바라지 말라 손이 다 닳아도 천근으로 서 있어도 천출의 이 마음 죽일 놈의 사랑 하늘도 못 헤아리지 아이는 노인의 냄새를 알아가고 노인은 자신의 노화된 봉건의 냄새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극이요 희극 뒷산 박달산 푸른 새벽 숲에서 뻐꾸기 운다 오늘은 또 어떤 산도깨비 내려올까

 

 4

 

 돌아본다 철칙 하나 불온과 악을 이기는 것은 사랑 사랑뿐이더라 일 십 백 천 만 내가 이르지 못함이니 수억만 번 헤아려도 사랑 하나뿐 너덜너덜 사랑 나를 키워온 건 구 할의 사랑 그대로 그대로 지금 그대로

밥, 밥 먹어야 하니까,

 

 


 

손한옥 시인

2002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2016년 《한국미소문학》동시 당선. 시집으로 『목화꽃 위에 지던 꽃』,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 『13월 바람』, 『그렇다고 어머니를 소파에 앉혀 놓을 수는 없잖아요』,『얼음 강을 건너온 미나리체』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