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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옥 시인 / 직설적인 새
매화 배꽃 다 보는데 가뭄 든 밭이 다 젖도록 할 말 못할 말 다 쏟았다
오두방정 삐쭉새에게 들키고 말았다 조석지변 용심을 내려다보며 쉬지 않고 말한다 삐쭉삐쭉 삐쭉삐쭉 사이좋게 살아라 쇠귀에 경 읽기다
늘어진 벚꽃 한 움큼 훑어 던졌다 날아가지 않고 산뽕나무 가지만 촐랑 가소롭다 말한다 고렇게 생긴 맘에 예쁜 시가 나오냐 삐쭉삐쭉 어림없다 삐쭉
손목에 힘 들어간 호미촉 뜨겁다 애꿎은 돌 바스러지고 산새 악다구니 악처 입같이 막을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진 것이 남의 흉보는 것이라고 삐쭉새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한나절 내내 삐쭉거린다 껍데기만 멀쩡하다 삐쭉삐쭉 너 잘났다 삐쭉
벚꽃 이파리 하나 쑥 이파리 하나 싹싹 비벼 귀 막자
손한옥 시인 / 비극과 희극 사이
1
나는 저 아이를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데 아이는 오직 제 어미와 아비만이 합일이다 함께 사는 건 가족이다 한결로 사랑하는 거다 일러도 아이가 그려놓은 동그라미 바깥은 천길 벼랑
아이는 유년의 내 거울 내가 서 있다 나 닮아서 예쁘고 나 닮아서 밉다란 말 인과가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는 것이 아니더라 시시때때로 어머니 앞에 서는 나 어머니 환생하시면 진상의 그 딸 다시 만나실까 묻는다 그래 수수억 년 지나도 그리하실 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 끈 놓지 않을 거니까 웬수처럼 귀인처럼 나찰처럼 엄마 아버지 오빠 우리 언니 내 동생 욱이 사무치는 이름들 돌아오라 다시 다시,
2
어느 날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 말 할머니 손은 목욕탕에서 나온 것 같아요 깨끗하단 말이구나 했는데 천만에다 물에 불은 듯 늙고 주름진 손에 대한 아이 눈의 기준 내 혐오의 기준 잠긴 문 앞에 와서 문 열라 해도 열지 않는 문 앞에서 기다리는 건 비감
그대로 머물러라 세상에서 사라져도 기억 한 켠 세잎 클로버에 불과할 뿐이니 네잎 클로버를 딴 희열의 기억은 잊으시라 견주거나 노여워 마시라 아이의 사랑이 몇 센티이거나 몇 킬로이거나 재단하지 마시라 아이 마음 그 바탕에 있는 어른은 언제나 자유를 제지하는 봉건자, 저를 거부하고 계관하는 대상이라 여길 것이니 내 유년의 한 켠처럼 만날 때마다 대쪽 같던 지적자 상주할매 혼일지 몰라
3
노여워 말라 바라지 말라 손이 다 닳아도 천근으로 서 있어도 천출의 이 마음 죽일 놈의 사랑 하늘도 못 헤아리지 아이는 노인의 냄새를 알아가고 노인은 자신의 노화된 봉건의 냄새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극이요 희극 뒷산 박달산 푸른 새벽 숲에서 뻐꾸기 운다 오늘은 또 어떤 산도깨비 내려올까
4
돌아본다 철칙 하나 불온과 악을 이기는 것은 사랑 사랑뿐이더라 일 십 백 천 만 내가 이르지 못함이니 수억만 번 헤아려도 사랑 하나뿐 너덜너덜 사랑 나를 키워온 건 구 할의 사랑 그대로 그대로 지금 그대로 밥, 밥 먹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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