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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향란 시인 / 자람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7.

최향란 시인 / 자람

 

 

나무는 흔들리며

자라고

아가는 울며

자라고

아이는 아프며

자란다는

할머니 말씀

 

자주 흔들리는 나

많이 우는 나

자주 아픈 나

나는 많이 자랄거예요

할머니 말씀처럼

 

 


 

 

최향란 시인 / 달과 별

 

 

밤이면 밤마다

저달은

무슨 고민이 그토록 많아

어둠의 벽에 기대앉았다

매일 더 핼쓱해진 얼굴로

성급히 바다 저 너머로 숨었을까

 

밤이면 밤마다

저별들은

무슨 비밀이 그토록 많아

어둠의 벽에 기대앉아

밤이 다하도록 끼리 끼리 소곤대다

성급히 바다 저 너머로 숨었을까

 

 


 

 

최향란 시인 / 밤새 내린 눈

 

 

깊은 어둠 속에

눈은 조용히 찾아왔어요

하늘 그 어디 먼 데로부터

추운 세상을 덮어주려고

 

깊은 어둠 속에

눈은 조용히 찾아왔어요

하늘 그 어디 먼 데로부터

시린 마음을 덮어주려고

 

깊은 어둠 속에

눈은 조용히 찾아왔어요

하늘 그 어디 먼 데로부터

지저분한 세상을 덮어주려고

 

추운 길도 멀다않고

어둔 길도 마다않고

눈은 밤새 조용히 찾아왔어요

하늘 그 어디 높은 데로부터

 

 


 

 

최향란 시인 / 봄의 교향곡

 

 

반짝 반짝

여린 잎새에 부서져 내리는 햇살

 

포롱 포롱

새순을 쪼는 새들의 지저귐

 

사그락 사그락

겨울 비늘 터는 도마뱀 소리

 

바스락 바스락

 

꿈터를 정돈하는 다람쥐 소리

 

자작 자작

봄을 돋우는 아이들 발소리

 

도담 도담

숨을 쉬며 자라나는 새싹

 

아 아

언제 들어도 정겨운 생명의 노래

봄의 교향곡

 

 


 

 

최향란 시인 / 하얀 종이와 까만 연필

 

 

하얀 종이와 까만 연필

각각 있으면  

그냥 저냥 물건

그 이름은 ‘문구용품’

 

하얀 종이에 까만 연필

함께 있으면

 

생각이 되고 마음이 되고

그 이름은 ‘글’

 

 


 

 

최향란 시인 / 갈치에게

 

 

은빛이란 잠시 고흐의 꿈을 꾸는 것

 

죽음 앞둔 너는

팽팽히 당겨진 릴 끝에서 날카로운 아가리 벌렸다

바다를 떠나는 깊은 밤

은빛가루 온몸으로 토해냈을 것이다

 

이렇게 멀리 떠나와 있어도

꼬리까지 비릿한 바다

푸른 바다 헤쳐 나가던 긴 등지느러미가

각자의 하늘로 흩어졌다

 

별이 빛나는 밤에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렸다는 고흐

 

아무도 사가지 않았던 화가의 가난과

행방불명된 반짝이던 어느 해 가을과

흩어진 네 등지느러미까지

 

또 다른 별이 되는 것이라고 웅얼거리며

끝까지 아가리 벌리고 있다

 

 


 

 

최향란 시인

전남 여수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밖엔 비, 안엔 달』(리토피아, 2013)이 있음. 여수 해양문학상 시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