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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공광규 시인 / 달빛 호수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7.

공광규 시인 / 달빛 호수

 

 

수천수만 장 연잎이

수면 위로 손을 뻗고 있네

 

공연장 무대를 향해 손을 뻗은

수천수만의 관중이네

 

달을 잡으려고 달빛을 받으려고

환하게 상기된 연꽃

 

달과 달빛은 연잎에 고이지 않고

호심에 호면에 둥 둥 떠있네

 

아름다운 것은 잡히지 않네

연잎은 달을 잡아본 적이 없네.

 

 


 

 

공광규 시인 / 시골집에 가면서

 

 

휘어진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니

길이 왜 곡선으로 나 있는지 알겠네

아쉬워라, 논길에서 뱀을 만난 듯

진흙탕을 직선으로 달려가다 넘어진 친구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가면서

사선으로 어깨가 기운 사람들을 만나보니

늙어가는 나의 등이

왜 비탈로 저물어 가는지 알겠네

 

노을을 날개에 묻히고 온 새가

추녀 끝에 흐린 전구불로 매달리는 흙집

입매가 감나무 잎처럼 둥근 영정사진을 꺼내

해와 달이 둥근 비밀을 물어야겠네.

 

 


 

 

공광규 시인 / 걸림돌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되 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공광규 시인 / 아침 풍경

 

 

회화나무에서 쥐똥나무 울타리로

쥐똥나무에서 명자나무 가지로

아침 새들이 옮겨 다닌다

 

새는 나뭇가지와 나뭇가지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악보를 열심히

공중에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의 몸에 햇살이 쏟아지자

햇살이 깃털을 켜는지 깃털이 햇살을 켜는지

소리가 맑고 높다

 

새가 명자나무에서 수수꽃다리나무로

화락! 자리를 옮기자

붉은 질투가 꽃잎으로 진다.

 

 


 

 

공광규 시인 / 적당한 거리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수목정원 한쪽

바위에 기댄 소나무 허리에 흉터가 깊다

일생을 기대보려다 얻은 상처인 것이다

 

일곱 가지 보물로 지은 법당이 있고

한량없는 하늘 사람들이 산다는 도솔천

지장보살도 어쩌지 못하는 관계가 있나 보다

 

내원궁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진달래꽃과 생강나무꽃이 거리를 두고 환하다

당신과 나, 적당한 거리가 도솔천이다.

 

 


 

공광규 시인

1960년 서울 돈암동 출생, 충남 청양에서 성장. 1986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말똥 한 덩이』 등과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그리고 논문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가 있음.  1회 신라문학대상과 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 수상.현대불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