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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철 시인 / 꿈은 세상 밖의 일
외롭다, 지워질 인연으로 하여 가슴이 더 없이 시리다, 이젠 서러운 삶의 독백 따윈 집어치우고, 마냥 돌아만 가고 싶다 막혔던 하늘길 만장(挽丈)으로 열어 처음으로 왔던 그 길에 다시 한 줌 흙으로 뿌려지고 싶다 허기진 목소리로 세상의 말간 울림을 쫓던 서러움일랑 훨훨 벗어 던져 메마른 눈가에 음습의 그림자로 내리던, 내 눈물을 먹고사는 모든 인연의 자락을 놓아 가벼워진 두 눈, 다시는 뜨고 싶질 않다 진솔한 마음의 실체를 잃어, 이미 죽은 것과 진배없는 허깨비 같은 내 삶의 중첩(重疊)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세상을 찢어발기는 폭우 속, 저미든 사랑을 다시 엮어 하늘을 향해 피뢰침을 올려세우는 서러운 넋의 사내여, 이제 누구를 위해 울 것인가 이제 다시, 누구를 위해 삭혀 오던 한(恨)을 녹여 피안의 길을 열어줄 것인가 소쩍새 자취를 감춘 長山 깊은 밤, 망제(望帝)의 구슬픈 애상의 소리도 어둠에 잠식당해 그렇게 죽었거늘……., 바람의 운명으로 짐 지워져, 바람으로 살아가야 할 먼먼 에고의 길에 돌아오는 인연의 부대낌으로 가슴살 마디마디, 눈물의 씨앗을 파종하는 초라한 여정이여 무엇이, 무엇이 너를 그토록 바래던가, 무엇이, 무엇이 너를 간절히 원하여 이렇듯 시름 깊은 밤 산사의 고요에 묻혀 서러운 울음소리 모질게 모질게 뼛속까지 심어야만 하는가 존재의 의식이 비워지면 허무로 점철되는 것이 생일진대, 여기쯤에서 모두 마침표를 찍고 싶다 하늘이 땅을 빌어 그 울음 짙게 짙게 울리는 날, 장산 깊은 골도 회색빛 암영(暗影)에 갇혀 운다 혼절(昏絶)의 호곡 소리 무주공산에 갇히면, 깊디깊은 사념(思念)이 회의에 가득 찬 영육을 떨어 울려 난, 이렇듯 몸져누워 짙푸른 울음소리 그칠 수 없는데….,
전형철 시인 / 허무의 노래
비 내린다, 장산 깊은 골 울어 예는 소쩍새, 스스로 눈물의 길을 지우자 푸른 잎 하늘을 향해 창끝을 세우는 허공을 적시는 비는 서럽게 서럽게 적막의 시간을 달구며 눈시울 적신다
바람이 자고 없는 세상의 틈새를 꽃비린내 물씬 풍기며 밤비는 서녘 하늘을 뭉쳐, 낮은 음계로 읊조리며 시간을 희롱한다 길은 언제나 고요했고, 그 길은 무한의 변화를 거부하며, 예대로이나 옛길에 오른 자의 행보만 달라졌을 뿐이다
사람 사는 일도 그와 같으리라, 누군가 비워진 자리에 모난 인연으로 찾아들어 영혼의 부재로 인하여 절망의 몸살을 앓는 존재를 서슴없이 난도질하며 희희낙락하는 인의의 가면 속에 숨겨진 야수의 얼굴을 가진 이가 팔만 사천 법계를 우롱하며 어둠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것처럼…….,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비가 되어 이완의 세상을 끌어안은 이 시간도 버석대는 마른 가슴 움켜쥐고 드러누워 통곡하는 슬픈 영혼의 존재는 있다 차마 성근 가슴 눅눅하게 젖을세라 하늘을 향해 등 뉘고 야윈 뼈, 마디마디 땅속에 뿌리 내리는 서러운 넋 있다
마른 눈물이 하늘을 적실 때도 서럽지 않았으나 폭우로 내리는 그대들의 인습의 탈에 갇힌 야멸찬, 야누스적 웃음이 두렵다 회색빛 낮게 드리운 하늘이 슬픔의 더께를 더 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덮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여! 누군가의 사랑이 그리워 바늘의 끝처럼 여윈 갈비뼈마저 땅속 깊이깊이 박고 질긴 그리움의 뿌리 내리는 이여!,
이 모두 부질없는 삶의 애환이다, 서러운 인습의 행간, 그 징검다리에서 발길 흐트러지면 나락의 구렁으로 떨어지는 모두가 부질없는 허무의 노래이다
전형철 시인 / 민중의 혼이 되소서
이 시대, 빛은 지고 없다, 영웅이 필요치 않는 마음 가난한 자의 나라여,
민주의 항쟁, 짙푸른 음성 드높던 오월의 그 자리에 작은 묘비 하나와 눅진 몸, 불꽃에 실려 바람으로 가고자 했던 유고遺稿 님의 서러운 맘, 이 땅을 비 되어 적시면 山野를 환하게 불 밝힌 민초의 향기, 눅진 설움으로 이 가슴을 파고든다 결코, 잠들 수 없었던 뜨거운 열정으로 말간 영혼의 울림에 찬, 희망의 시대가 오리라 읊조리던 님이시여 맑은 풍광 속, 세상의 흐름은 그대로인데 코끝에 걸리는 알싸한 설움은 서녘 저무는 해그림자로 깔려 아린 동공에 빛으로 서리는 아름다운 이의 넋이여! 누가 저 먼 저승길 열어 님을 내쳤는가 내가 님을 죽였고, 우리가 다시 이 시대의 마지막 영웅을 죽였다 가시는 길목 어디에도 밝은 빛 한 점 없을진저 시리디 시린 가슴 눈물로 빛을 우려내며 먼먼 에고의 길 홀로 누빌 애달픈 혼이여! 님 떠난 이 땅, 오월의 꽃향기 애절하게 흩날리고 성근 구름도 긴 그림자 드리우며 서러움의 넋으로 잠겨 들고 있다 숨 막히는 적막을 뚫고 애달피 울어 예는 민중의 호곡 소리가 하늘의 중심에 닿은 탓에 오늘도 세상사 세우(細雨)에 젖는다 회색빛 낮은 구름 뒤로 숨어든 얼굴은 그리움의 회상이 되고 연초록 말간 상념 위에 오월의 푸른 넋으로 호명된 님이시여! 모진 세상 풍진 시름을 비우사, 그리하여 즈믄 강심을 뚫고 다시 떠오르는 붉디붉은 민중의 혼이 되소서!
전형철 시인 / 동백
붉은 목숨 푸른 바람에 소리없이 떨구고도 세상을 희롱하는 고매한 기품을 보라
짜디 짠 해풍에 햇살을 빌어 와 꽃잎 어루는 절대의 호명 속 한목숨 가없이 덜어 송두리째 낙화하는 붉디 붉은 단심
뉘 있어 저 붉은 피 울음 소리없이 삭여내고 속 타는 애달음 안아 뉠까
검붉은 치마폭 지천에 흩뿌리며 붉은 울음으로 공명의 깃을 치는 절개의 기품이여
창천(彰天)에 쏘아 올린 지상의 절규
구만리 장천(長天) 애환의 몸짓으로 피다 진 핏빛의 무지개
전형철 시인 / 노을에 그린 마음
비틀거린다 작은 바람에도 여지없이
전할 수 없었던 마음 노을에 그려 먼 하늘에 띄웠는데 모로 누운 밤그림자 텅 빈 허공을 덮치자 점점이 흩어지는 눈발처럼 가슴 뚫어진 이별의 자국들이 힘없이 무너져내린다
나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이대로 땅에 누워 버리면….,
바람불어 바람이 가는 대로 별빛은 자꾸만 멀어지고 한없이 떨리는 생명의 애착은 붉은 꿈을 머금고도 맥없이 떨어지는 촛불인데
바람에 젖는 계절 나에게서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달빛의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 저 붉은 노을이 되기까지….,
전형철 시인 / 그대 바람 되어 떠나던 날 ㅡ김영택 시인 추모 헌시
헛헛한 삶이 눈물에 젖고 그 눅진 눈물에 바람도 젖을 때 홍매화 꽃신 매듭지어 신고 먼길 설움으로 에돌아 가신 님아
노을에 그을린 하늘 허기진 외로움을 한 폭 풍경으로 그려놓고 가시는 걸음걸음 서러운 꽃비로 나리시나
들고난 인연의 업 은애(恩愛)의 굴레를 벗고자 가고 오지 아니한 사모의 정 따라 훠이훠이 바람길 서둘러 가셨는가
홍매화 꽃잎 위 푸른 별빛 쏟아지면 그대 시린 눈망울 눈꽃으로 내릴진저 불러도 대답 없을 이름 석 자 허공에 걸어 두고 님 홀로 가셨는가
아린 영혼의 비가(悲歌)에 귀 기울이던 말간 영혼을 가진 벗이여 그대 여윈 저 하늘의 별꽃 지고(至高)한 슬픔으로 이 땅 위에 떨어지면 지순(至順)한 울음이 빚어 올릴 단장斷腸의 낙루落淚 어이 외면 하시련가
이 세상 길의 끝 애환으로 부유하다 순백의 목련으로 내 가슴에 다시 필 순수의 빛을 닮은 지인이여 저 하늘에설랑 부디 시인으로 거듭나질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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