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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 시인 / 검정에 대한 오독
젖은 빨래처럼 누워 있는 고양이의 사체 이해할 수 없는 페이지를 뒤적이는 손가락처럼 무심히 지나친 길에 누운 고양이를 다시 펼치고 싶다
바퀴보다 빠르게 굴러가는 생각들 고양이의 그림자가 바퀴에 매달린 채 따라온다
고양이를 재구성한다
집 나간 어미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어둠이 내려앉아 캄캄해진 거라고 상상해 보자
새빨간 상상이 야생의 사과를 익어 가게 하고 바짝 익은 빵처럼 갈라지는 생각들 고양이 속에 빠진 고양이가 팽창하며 뻔하거나 도도한 검정이 와락 스며들어 명랑한 비명이 온몸에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나는 강렬한 찰나에 푹 젖고 있다
고양이의 늘어진 음모를 이해하고 둥근 등이 동그라미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완벽한 고양이가 내 품으로 달려들어 뜨거워질 때
어쩌면 우연히 떨어진 검은 폭설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표정을 잃은 달빛이 까맣게 허물어졌을지도 모르는 일 ***
금란 시인 / 고양이주의보
오전 9시 골목 카페의 화분과 테이블 그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 뛰어든다 햇볕도 쿵 내려앉는다
화분의 와장창 소리가 창밖으로 튀어 나갈 때 카페 앞을 지나가던 남자의 늘어진 추리닝이 운동화 끈에 걸려 넘어진다
고양이의 출몰과 노골적인 햇볕은 오늘 아침의 느닷없는 브런치 메뉴
목적 없는 발걸음이 허물어지고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닌 것이 카페와 골목 풍경을 순식간에 바꿔 놓는다
담장과 묘지에 붙은 고양이주의보가 바람을 타고 골목으로 날아온다
죽은 공간 속으로 뛰어든 고양이의 발톱에서는 피가 흐르고 빨랫줄에 걸린 내 블라우스는 젖은 채로 뱅글뱅글 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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