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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인 / 너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
실비아 잘 있는지 몰라. 깨어진 네 영혼을 조각조각 아교로 붙이고 반짝이는 물고기 비늘처럼 다시 태어나야 마땅해. 네가 마음대로 처분한 가스오븐렌지에 머리를 넣고 끝장 낸 네 생이 안타까워
노새 울음, 돼지의 꿀꿀 거리는 소리, 음탕한 닭 울음소리도 세상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구. 시끄러운 자동차 질주하는 소리, 폭주족의 우당탕한 오토바이소리도 소음이기 전에 살아있는 기계가 노동하는 소리라는 것, 실비아 플라스 생을 떠나 이제 완전 제 3자가 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어때? 지금은 코로나시대지만 그래도 살려고 마스크를 쓴 아이와 동네어른, 서로가 부딪칠까 조심조심 스쳐가는 세포 세포가 긴장해 서로를 경계하는, 그러나 실비아 여전히 푸른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리는 동안 사랑하는 신음소리가 가늘게 들려
실비아 잘 있는지 몰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지만 따지고 보면 너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없어. 너는 네가 선택한 꽃이 화분에서 자라고, 네가 주인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거리가 있고 네가 깎은 손톱이 삭아 꽃을 피우는 정원이 있는 동안, 너의 권리는 네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관계있는 푸른 공기와 파닥이는 풀잎 창을 톡톡 때리고 깨지는 빗방울, 방바닥에서 물걸레로 훔쳐지는 먼지에 있었어. 나도 내 존재자체로 권리라 말했지만 이제는 알아 심지어 내가 만든 그림자에게 마저도 나의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 그림자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무리 따져도 실비아 플라스, 너는 만인이 사랑하는 여인이나 너를 네 생각 속으로만 몰아간 것은 너무 했어. 네 시 철자 철자에 염색한 듯 밴 눈물이 있지만 그것은 염분이 약해 소금결정을 이루지도 네 시를 절이는 방부제 역할을 못했지만 네 시는 지금껏 건재해 네가 여덟 살 때 땅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아버지 오토 플라스가 죽은 상처가 너의 문학 여기저기 얼룩처럼 남아있고 마드모아젤지에 발표한 민튼 씨네 집에서 보낸 일요일로 필두로 자살시도의 경험을 쓴 소설 벨자가 아직도 읽혀. 정교하고 치밀한 문체로 고독한 생을 그려내고 테드와 이별로 극에 달한 슬픔으로 파르르 떨던
실비아 잘 있는지. 생의 기억에 개처럼 빠졌다가 저승의 언덕에 올라 온몸을 털어 기억을 말리고 있는지 몰라. 물방울을 방울방울 뚝뚝 떨어뜨리듯이 기억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저승의 바람과 햇살에 몸 맡겨 뽀송하게 마르는 오후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실비아 플라스, 너는 너의 주인이듯 너를 멋대로 세상 밖으로 내몬 것은 무심한 행동이었어. 너의 주인은 풀꽃 같은 웃음으로 아침이면 너를 맞이하는 딸, 고사리 손으로 네 손을 잡던 아들 너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없고 너를 떠난 테드 휴즈, 내 식으로 말하면 휴거도 없고 밑을 닦는 휴지 같은 존재로 인해 네가 네 권리를 행사한 것 정말 무가치한 일이었어. 실비아 플라스 지금 내가 컴퓨터 자판기를 조용히 두드리는 창밖엔 새벽 4시가 와 있고 물안개가 샛강에 자욱이 피어오르고 산란하는 잉어의 퍼덕거리는 소리가 뜨겁게 들려와
실비아 플라스, 나도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고 너도 더더욱 너를 파괴할 권리가 없었어. 네가 더 오래 이 세상에 있어 눈물 비린내 나는 삶 뼛골에 사무치는 증오와 그리움으로 끝내 모든 것을 용서하며 극복한 시 한편이 네 가슴 깊은 곳에서 발굴되듯 네 체온과 눈물에 젖어 태어났으면
실비아 플라스, 테드 휴즈와의 사랑과 이별, 신화의 시란 문구가 내 가슴을 생인손 아리듯 아리게 해. 지금 나는 네 시 거상, 누구일까, 은유 사형집행자, 모서리를 읽으며 네가 영국식으로 노랗게 핀 장미정원을 걷고 있을 거라 상상하고 있어. 너를 파괴하며 난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반어법처럼 반증적으로 가르쳐 줘서 고마워 실비아 플라스, 내 생도 고독해, 고독하지만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
실비아 플라스, 네 가족이 어느 별에서 다시 만난 네가 요리하며 흥얼거리는 소리가 은하수로 흐르기를 원해, 실비아,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실비아 하면 벌판을 흠뻑 적시는 실비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실비야. 실비야, 실비아, 메마른 내 감성을 일깨우는 푸른 실비아
웹진 『시인광장』 2021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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