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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새하 시인 / 불안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8.

김새하 시인 / 불안

 

 

밖에서 잠기는 내 방이 싫었을 뿐

꼭 쥔 차비는 오천 원뿐이어서 엄마 이름을 숨겼다

 

화단은 잘못 심어진 꽃을 토했다

홀딱 벗고 뛰어가는 새벽안개의 뒷모습만 남은 자리에

성벽처럼 옷을 껴입은 내가 누웠다

화분에 심겼을 때로 기어가는 달팽이를 따라간다

 

허방다리가 아닌지 두들겨 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잔꾀를 부려보지만 안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아서

 

꽁꽁 껴입은 나는

화단 옆에

통점으로 숨 쉬는 꽃처럼 엎드렸다

 

칼에 베인 약속은 날아오는 칼날을 잡게 했고

그에게 베인 증거는 자지러지는 이명을 키웠다

어느 타이밍에 웃어 줄까

 

비상구의 비상은 다쳤고 구는 열리지 않는다

범주는 범주 안에 들어와 결핍되었다

방치된 심장이 사랑을 먹어치우는 동안

안개 낀 아침을 지난 정오는 더 맑고 푸르다는 것을 잊었다

 

- 월간 모던포엠 2019년 3월호

 

 


 

 

김새하 시인 / 뚜껑별꽃

 

 

요정은 뚜껑별꽃을 꺾어 사람들에게 갔다

이 꽃 이름이 뭔지 아니 뚜껑별꽃이야

왜 뚜껑별꽃인지 알고 있니 뚜껑 달린 별이라서일까

별꽃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앞발을 모으고 가슴을 내민 고양이도 동공을 세우고 앉았다

 

요정은 별꽃이 없으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가버릴까 봐 쉴 새 없이 별꽃을 흔들어 보이며 별꽃의 이야기를 한다 고양이가 앞발에 침을 묻혀 얼굴을 닦았다

 

별꽃은 잘린 발목을 잡고 비명을 질렀지만

점점 더 반짝일 뿐

고양이가 야옹 울었다 야옹야옹 울었다

 

요정은 더 신나서 이야기했고 더 심하게 흔들었다

별꽃은 혼절했고 그때야 요정은 손에 묻은 초록 피와 별꽃을 보았다

고양이는 흰 꼬리를 흔들며 사라졌다

 

요정은 별가루를 뿌리며 울었고 별가루가 쌓인 하늘에 구멍을 파고 별꽃을 심어주었다 사람들은 눈물 대신 별가루를 흘리는 이유를 물었고 요정은 그때부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먼 옛날부터여서 이야기는 아주 오래 계속될 예정이다

 

 


 

 

김새하 시인 / 꽃이 피기 위해

 

 

다른 숲에 살면서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 있나요

아마 비가 내리는 이유일 겁니다

 

거기 서 있었죠 붉은 석류나무처럼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지만

눈에서 석류가 톡 터지는 향기가 났습니다

잡아 본 손도 안아 본 몸뚱이도 없었지요

 

석류는 두 번 세 번 새로 열렸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듣고 싶은 귀와 말하고 싶은 입이

의자 들고 벌서는 아이처럼 위태롭습니다

 

서먹한 눈물은 그네를 맬 수 없었습니다

고요한 석양이 흔들림 없이 나를 베고

시치미를 떼네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내 몸을 소파에

소파에 던져놓은 물건에는 꽃이 피지 않아요

아프다면 살아있다는 것이겠지요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됐습니다

 

오늘 비가 참 많이 옵니다

 

<월간 모던포엠 2020년 6월호>

 

 


 

 

김새하 시인 / 12월의 키스

 

 

수천의 씨앗을 만들 때까지 꽃인 줄 몰랐다

햇빛과 피로 빚은 장막을 쳤다

몇 개 없는 젖을 서로 빨려고 덤벼든 아이들을 모두 품고 있는 동안

빈손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이별의 계절을 맞은 아이들을 보낼 때 녹아 붙은 살이 같이 떨어졌다

군데군데 드러난 뼈에 스치는 마지막 달의 상처

바람을 계산하지 않고 동화되어 가는 밤이었다

 

나같이 곁에 선 너와

바스러져 갈 때 더욱 밀착하는 이파리들과 같이 겨울을 걸어간다

어깨를 기대 본 적 없는 치열한 아침의 서정처럼

 

우리는 슬프지 않아도 울어야 하고

슬픈지도 모를 만큼 견딘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야 한다

 

어쩌면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향기가 사라지고 꽃가루 흩어져도 뿌리 박힌,

꺾이면 이별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꽃이구나

 

낙화하는 것은

원하고 원했던 끝으로 가는 것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는 꽃으로 태어나 나비 속으로 들어간다

 

 


 

 

김새하 시인 / Y와 C

 

 

뿌리 없는 해초

미는 대로 움직여도 가고 싶은 곳 있고

파도마다 일렁거려도 기억에 남는 파도가 있다

 

는 뻔한 이야기가 신경 쓰이는 것은

아무렇게나 놓고 간 C

에 대한 Y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해초가 바라보는 곳이 먼바다인지 뭍인지 모르지만, 뭍으로 보냈다 뒷일은 책임 못 진다 내가 키우던 화초가 아니므로 양심에 걸릴 것 없다는 게 Y의 생각이고 C에게 까닭 없어야 하는 서운함에 대한 척이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멀었었다는 전제나 멀어질 것이라는 예상 사이에 낀 부록 같은 것, 유행 타는 잡지라도 괜찮지만 5장짜리 책 소개 책자는 아니길 바라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

 

매일 방향을 바꾸고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뿌리가 사라진다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하게 있었던 그것,

 

키보드에 손을 얹고 졸다가

가까워지는 것과 멀어지는 것을 동시에 두려워한다

밤마다 발견하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눈물을 관장하게 된 C 음악을 켠다

관장은 거창한 말, 남몰래 무통 주사를 달고 다닌다 주사액이 비면 눈물을 흘리고 통을 채운다 다시 몸으로 흘러든다 이 넓은 공간을 채울 수 없거나 좁은 머릿속을 비울 수 없을 때 더 많이 소비된다

 

날씨와 상관없이 더워졌다 쓰렸다 마음대로인 속

속이라면 내장, 내장 같은 밤은 푸딩유령처럼 우리를 가둔다

푸딩 속 과일은 어제의 Y 오늘의 C 내일의 해초로 이루어졌다

Y는 C를 만날 수 있을까

 

<모던포엠 2020년 10월>

 

 


 

김새하 시인

창원에서 출생. 2017년 ≪시현실≫ 신인상과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되어 ≪시작≫ 등단. 2017년 시현실 신인문학상 수상. 영남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