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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시인 / 아이발릭(Ayvalik)에서 일박(一泊)
여행이란, 운엔트리혜 보흘게무트하이트! unendliche Wohlgemutheit
호롤롤롤로~ 호롤롤 입술 오므려 발음하면 의미는 사라지고 물거품만 남는다
보스포루스 갈라타 다리(Galata Bridge)를 가로질러 말마라, 마르마라Marmara해(海)를 말도마라 말없이 건너자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아야 옳고 그래야만 군말 없이 맘 편해진다 안탈랴 구시가지에 이글거리는 버닝 썬 그 동안 봄 없이 계절 없는 여름이 몇 번이나 지나간 것일까 까탈 부리자는 게 아니다 따질 건 분명히 따져야지
터키 돈 25리라면 5달러거나 4유로 남짓 그 돈이면 카파도키아산(産) 단물 밴 오렌지를 한 자루나 살 수 있다
이스탄불 신시가지 탁심광장 길바닥의 악사들에게 호롤롤로 호롤롤~ 까짓 거 일 백 리라 쯤 통 크게 쾌척하려다말고 쪼다같이 주머니 속만 계산하다가 그냥 돌아서비린 것 후회막심 마음에 걸린다
여행이라는 게 다 그런 것 뒤돌아서면 멋있었고 생각해보면 아쉽기만 한 것 관광버스로 관광지 몇 군데 호로록 둘러본 것만으로도 그 나라를 다 보고 온 것 맞지요, 맞다 거기가 참 멋졌다고 거기 안 가본 사람은 천국 비슷한 곳 근처에도 못 가본 가련한 족속들이라고 수다를 떨다가 빈털터리로 출발지에 돌아오면 거기가 어디였더라 졸면서 영화 한 편 보는둥마는둥 극장 밖으로 풀려나온 사람처럼 이런 제길 일상이 이렇게 대기하고 있었을 줄이야 기왕 이럴 줄 알았으면 아야소피아 대성당의 뚱뚱한 석조기둥이나 끌어안고 악착같이 소원을 더 빌었어야 하지 않았나
아이발릭Ayvalik이라는 소읍에서는 어느 호텔에 묵었더란 말인가 겨울 포도밭 쉬린제에서 와인 없이 간단한 점심을 먹고 언제 트로이로 목마를 보러 이동했던가? 제 철을 놓친 편도나무 아몬드 꽃은 의문부호 같은 꽃망울 매달고 있는데 되돌아보면 아이발릭이라는 마을은 골든 혼에서 실종된 목선처럼 기억에서 종적 없이 사라지고 없다
《호서문학》 63호.
김영찬 시인 / 미술관에서의 소동(Riot in the gallery)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
구름에스컬레이터에 몸 싣고 구름 지하갱도로 흘러 들어가 빌렌도르프의 대륙적인 젖가슴에 풍덩 안기면 뭐가 되던 되겠지 살찐 유방과 원시적인 허벅지 사이에 뿌앙뿌앙 메추라기 배꼽은 부풀어 오르겠지 그러면 뭐가 되겠지 그런데 메추라기는 배꼽이 없다는 사실 그것이 큰 문제 라고 그러던데 그렇지만 그건 또 뭐가 그렇게 문젯거리라고 겁먹은 겁쟁이들 아무르장지 도마뱀에게 장짠지 된통 물렸나 꼬리 잘린 하반신에 정신은 말캉말캉 줄행랑 놓기 딱 좋은 조건 뭐가 되긴 될 것도 같은데
꽃그늘 나비날개 하느작하느작 입소문 탄 구름향기 드높이 그래그래 눈높이에 맞게 헬리오가발두스 황제정원의 고급품종 장미꽃 만개한 길 거리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맨몸뚱이 쓰러져 눕는 백주의 애인들 진한 립스틱 때문에 질식해 죽는 연인들의 수효가 철 지나 시들어 죽는 꽃보다 훨씬 더 많다는 얘기를
사랑에 굶주린 돌고래에게나 던져줘야 한다
그럼 그렇잖고 150살 넘도록 '눈빛이 하늘에 가닿'지 못하면 레 죄 쥐스꼬 씨엘(les yeux jusq'au ciel) 라흐쌩(larcin), 라흐쌩 라흐쌩은 좀도둑이라는 뜻 그러나 엉두스 라흐쌩(undoux larcin)이라고 수식어를 달면 달콤한 '도둑키스'로 의미는 뒤바뀐다고 주워들었다
꼬랑지 끊고 도망간 아무르장지 도마뱀과 나비도둑 따라 잠적한 움베르토 보초니가 버럭 화를 내면 어쩌나 무관심한 나는 미술관 수장고에 숨어 들어가 엉거주춤 발가벗다 만 비너스상이나 훔쳐봐야겠다
김영찬 시인 / 두 대의 피아노와 당나귀
두 대의 피아노와 한 마리 당나귀가 있다
당나귀는 귀가 너무 커서 타악기소리를 싫어한다 그러나 과도하지 않게 언제나 피아노 건반 위를 뚜벅뚜벅 걷는, 걸어가면서 산책 중 명상에 잠기는 습관이 있다
당나귀 발굽을 닮은 내 손바닥엔 두 대의 피아노 - 한 대는 피아니시모 - 또 한 대는 피아노포르테 흰 포말 부서지는 해안에서 안단테와 비바체 그리고 하얀 건반을 두드리고 지나가는 광풍들 해안선 저쪽에는 반라의 연인들을 그늘에 숨기는 검은 건반의 숲도 있다
두 대의 피아노와 한 마리 당나귀라고 나는 썼지, 그랬지 두 대의 당나귀와 한 마리 피아노라고 고쳐 적으련다 한 마리의 검은 피아노가 두 대의 당나귀 갈기와 말총꼬리를 붙잡고 속도를 내겠지
그러면 고리타분하기로 소문난 저 지구의 한 쪽 모서리가 발굽 닳아서 일상이 기우뚱 기울겠지
그러므로 과도하지 않게 ‘알레그로 마 농 트로포’로 가자고 당나귀 귀에 대고 속삭여야겠다 사랑은 allegro ma non troppo, 라고 피아노가 알아차릴 때까지
김영찬 시인 / 해바라기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됐어, 무지막지 무식하고 참 못됐어 정말!
세상에 좋은 시는 지가 다 짓고 세상 좋은 노래는 sunflower, good morning~^* 저 혼자 다 불렀네!
태양 아래 아쉬움이 남아 있어 달무리구름까지 피워 올렸나?
독불장군, 구름사다릴 타고 그 높이까지 집 지으려다가 허리 꺾이는 줄 왜 몰랐나
해바라기 꽃은, 그럼에도 건방진 태양 볕 북회귀선 거미줄 아래 나직이 남모르게 혼자 늙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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