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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선 시인 / 귀곡잔도(鬼谷棧道)
가슴이 무너질 때 그 길을 걸었다
겨우겨우 걸음 떼다가 더는 디딜 수 없어 멈춰 서자
오래된 위태로움이 천 길 낭떠러지로 산산조각 나 나부끼고
목숨은, 궁지에 몰리면 신출귀몰하는지 절벽이 바닥이 되고 끝은 시작이 되었다
성백선 시인 / 죽 쑤는 아침
햇살이 주방창을 노크할 때 신문이 들어왔다 바람 빠진 공 같은 그의 구두를 밟고 문틈, 모로 누워 있는 등이 뒤척일 때마다 아버지의 오래된 등골이 가물거리고는 시계 초침 속으로 무심히 흘러 들어간다 암초에 긁힌 패각처럼 건조한 벽과 벽 사이에서 나는 새로 산 식탁보를 꺼내 깐다
한물간 해초가 떠다니는 바위 주변을 맴도는 저쪽 칼로 물을 베는 이쪽 결국,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며 썰물은 뒤에서 거품만 부글거리다가 꺼졌다 오늘은 활전복 내장까지 넣어 죽을 쑨다 중(中)불에서 뭉근히 죽이 끓는 동안 주걱은 득득 가슴 밑바닥 응어리 풀어내고 대접은 둥글게 비어 있다 한 그릇의 초록빛 아침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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