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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음 시인 / 나는 창문을 기다린다
벽은 창문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못을 치고 저렇게 창틀에다 가두어 두었다 그런데 정작 창문은 사라지고 없다 창문을 목격한 자 누구인가 입구와 출구가 한통속으로 파다한데 고개를 처박은 가로등은 어제의 밤 속에 잠시 머문 적 있는데 나는 그 사이로 팔을 쑤욱 넣어보는데 창문이 사라지다니 참 이상한 일이야, 창문은 창틀에서 분리되어 어디서 창문의 시절을 보내고 있나 그 앞에서 백일홍이 피고
욕을 하고 구토를 하고 애인과 헤어지고 아름답지만 슬픈 백합이 졌다
창문을 떠나보낸 벽은 벽창호가 되었다 숟가락이고 밥이고 신발이고 낙서였던 검은 안경의 미스터 창문 씨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까닭도 모른채 기다리느라 세월 다보낸다
와장창! 추억을 깨버리고도 달려가야 할 일들이 있다면 행방이 묘연한 일들은 구두를 버리고도 지나간다
여보, 이 집을 새로 지어야겠어요. 창틀은 무너질 듯 다시는 창문을 품지 못하겠지만 웃으면서 울면서 녹슨 창틀은 거기 아름다운 창문이 있었다는 흔적을 오래 가진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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