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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인구 시인 / 고구마를 읽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9.

김인구 시인 / 고구마를 읽다

 

 

고구마를 캔다

무성한 순들의 곡선이 얽히고 섥힌 덩굴 손을

거둬 올리며 땅속에 호미를 조심스럽게 들이민다

단단한 흙들이 서로의 어깨를 풀어내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삼삼오오의 행렬,

펼쳐진다

 

보랏빛으로 자주빛을 다스린 고구마를

밭둑가로 밀어 놓는다

 

젖은 흙 말라가는 고구마에는

그물보다 촘촘한 한바닥의 햇볕이 숨어있고

한잔 구름을 마신 하늘 한 칸의 여유가 들어 있고

이미 바다를 떠나 온 비의 예찬이 들어있으며

들락거린 바람의 구멍, 잃어버린 조각하나

퍼즐처럼 맞춰져 있다

 

밤마다 내려오신 神과

허리 굽은 어머니의 노동요가 빼곡히 들어있는,

둥글게

둥글게 연결된 우주의 자화상이

한 가득이다

 

 


 

 

김인구 시인 / 나무도마

 

 

너는,

천개의 상처를 지닌 채 아침의 햇살을 받고 있는 너는,

너무 많은 상처의 무늬로 글썽이다 반짝이는 너는,

파프리카처럼, 브로콜리처럼 사선으로 넘어가다 뭉그러지는 너는,

목구멍과 밥주머니가 최후의 목적지인 너는,

천개의 상처를 오롯이 담아 위벽을 쓸고 장관벽을 쓸어 내려가는 너는,

견고함을 부드럽게 더욱 부드럽게 상처에 버무리는 너는,

오랜 숙련으로 단련된 고독을 위로하는 너는,

축축하게 젖다가 햇볕에 바싹 말랐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너는,

천개의 상처로 천개의 상처를 보듬어 안는 너는,

질기고 단단한 단절을 혓바닥처럼 무수히 되풀이 하는 너는,

상처의 통점을 소멸로 되돌려 주는 무심한 통점 같은

너는,

 

 


 

 

김인구 시인 / 바닥 꽃

 

 

모두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앉은 자리에서 싹을 내민다.

 

모든 걸 놓아 버리고 난 뒤에야

슬그머니 손 내밀어 핀다.

 

잃을 것, 가질 것 없어 두 손

툴툴 털어 버리고 가는 뒷모습에서

현기증처럼 아른대며 피어나는

바닥 이라는 꽃 한 송이

 

바닥을 치고서야

꽃으로 피는 그 눈물 꽃의 꽃말은

일어서야지

일어서야지.

 

 


 

김인구 시인

전북 남원에서 출생. 1991년 시집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신림동 연가』『아름다운 비밀』 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