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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충규 시인 / 네 어깨 너머,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4.

김충규 시인 / 네 어깨 너머,

 

 

네 어깨 너머, 낮달이 서걱거렸다

물결을 끌고 온 새 떼가 네 어깨 너머, 푹 꺼졌다

멀리 숲에 나무들이 제 비늘을 벗겨내고 생선처럼 누웠다고 네가 속삭였다

저 숲에 함께 날아가겠니? 라고 다정하게 덧붙였다

관심이 없었다 네 어깨 너머, 길바닥에 죽어 있는 고양이가 스산했다

어젯밤에 배가 고파 울던 그 고양이였다 분명 무늬가 같았다

살아있던 무엇인가가 소멸할 때 그 몸속에 있던 빛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몸이 식을 때 한순간 피시식 꺼져버리는 걸까

허공의 사방으로 뻗어나가 다른 빛들과 버무려지는 걸까

죽어볼까? 뜬금없는 내 말에 네 어깨가 막 피어오르던 일몰을 가렸다

남편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여자를 알아, 네가 말했다

너니? 라고 묻지 않았다

네 어깨 너머, 달이 화장을 하고 바람이 숲의 비린내를 몰고 오고

너는 더는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고 휴대폰엔

죽은 스승을 만나러 숲으로 갈까? 라는 친구의 문자가 식어 있고

오늘밤엔 어떤 고양이를 만날까

 

 


 

 

김충규 시인 / 설어(雪魚)를 위한 노래

 

 

미세하게 지느러미를 흔들며 雪魚가 몰려왔다

하늘 저 너머에도 어판장이 있는지

내장까지 흰 雪魚가 우르르 지상의 한 변두리에 쌓이고 있었다

먼 친척이 죽던 날에도 저리 쏟아져

저승길 얼어붙으면 어쩌나 어쩌나…

 

雪魚는 눈이 없어

제가 내리고 싶은 곳을 골라 내리지 못하고

그저 닿는 대로 내려 이내 빳빳하게 굳었다

손바닥을 펴고 있으면 희미하게 떨다가

스르르 뼈까지 녹아버리는 연약한 물고기,

따뜻하게 품고 싶어도 품을 수 없는 슬픈 물고기,

내 상한 곳을 핥던 당신의 혀가 그러했는데 그러했는데

그때 당신이 떠나던 날에도 저리 雪魚 떼 몰려와

당신과 나 사이에 무심히 아니 무참히 쌓였던 것인데

비늘 내음이라도 있었더라면 점점 멀어지는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가 그리 아찔할 만큼 아득히 느껴지진 않았을 텐데

 

나는 한껏 입을 벌리고

雪魚들이 머물 내 몸속의 동굴을 내어주었다

당신 떠난 뒤로 피가 차가워져

몸속이 냉동실처럼 얼어붙어 있다는 거

더운 숨결을 하역하는 당신의 혀가 유일하게 녹일 수 있다는 거

한 마리 雪魚처럼 내가

이 지독히 냉정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까닭

 

 


 

 

김충규 시인 / 숨이 차…

 

 

너울거리는 풀잎들,

책처럼 넘기며 읽는 벌레들,

햇살을 다 빨아먹은 혈색 나쁜 구름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허공

그 한참 아래

울음을 참고 있는 여자 하나

어떤 애절함이 스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물어보고 싶은데

―당신의 속에 너울거리는 풀잎들

내가 좀 읽어도 되겠는지요?

 

내 근심 하나 하나가 풀잎이 되어 너울거릴 때

그것을 넘기며 읽어줄 벌레는 어디에?

 

후렴 없는 노래는 숨이 차…

내 근심은 후렴이 많은데도 숨이 차…

 

숨이 차 벌레는 넘기던 풀잎을 더는 넘기지 못하고 엉거주춤

그 사이에서 배설을 하는 중,

가라앉는 중인 구름은 배설을 모르고

내 근심도 배설을 모르고,

오늘도 숨이 차…

나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왔지요

느리게, 느리게, 벌레의 걸음으로, 벌레가 될 때까지

온전히 내가 당신 속에서 한 마리 벌레로

너울거리는 그 풀잎들

다 읽을 때까지,

어느 순간 숨이 차지 않고

내가 너울거릴 때까지…

 

 


 

 

김충규 시인 / 그 집

 

 

폐가인지 빈집인지 한나절 내내 고양이 소리

한 마리 두 마리도 아니고 떼로 우는 소리

교미를 하는지 싸움을 하는지 앙칼진 소리 범벅이고

오늘 저녁은 콩나물에 밥 비벼 먹자고

할범이 할맘에게 애교를 부리며 그 집 앞을 지나간다 손 잡고 간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다정한 모습이다

태양도 낮달도 없는 교교한 한낮,

화약을 터뜨리기 직전의 목련나무는 숨을 참고 있고

참새 몇 마리가 지루하게 옥상의 난간에 앉았다 올랐다 한다

손바닥에서 허공으로 던져 올려지기를 반복하는 공 같다

폐가인지 빈터인지 그 집이 내쉬는 숨소리에

사방의 공기가 빨려 들었다 놓였다 하는 듯

대문이 간헐적으로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사람과 귀신이 서로 보기 좋은 모습으로

어울려 지내도 좋을 것 같은,

저승 간 조상들 불러와

헛밥이라도 나눠먹고 싶은,

 

 


 

 

김충규 시인 / 너 아직 거기 있어?

 

 

꽃상여는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개를 통과해야만 저승에 이를 수 있다는 듯이. 소리없이. 꽃상여의 마른 꽃이 점점 축축해졌다. 관 속의 시체도 축축해지고 있을까. 아무도 고인을 위해 통곡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안개 속에서 함부로 킬킬거릴 수 있었다.  이승과 저승이란 것,  길다란 원통을 사이에 두고 양 쪽에서 구멍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너 아직 거기 있어? 이곳이 참 따뜻해. 이리로 오겠니? 서로 반대편 구멍에서  빛나는 눈동자를 향하여 외치는 소리들.  바람이 불지 않았으나 안개는 자꾸 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꽃상여를 뒤따르지 않고 일부러 낙오했다. 숨어 있던 강이 천천히 공포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강 건너에 걸린 등불이 심장처럼 헐떡거렸다. 너 아직 거기 있어?  저승에 막 도착한 사람처럼 나는 강 너머로 도시를 향하여 소리쳤다.

 

[김충규 시인 시작메모]

이승의 '나'와 저승의 '나'가 안개 속에서 서로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서로 자기에게 오라고!

 

 


 

 

김충규[1965.11.1~2012.3.18]시인

1965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8년 《문학동네》 하계 문예공모로 등단. 시집으로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천년의시작, 2002),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문학동네, 2003),『물 위에 찍힌 발자국』(실천문학사, 2006), 『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 전당, 2010),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문학동네, 2013) 등이 있음. 2012년 3월 심장마비로 타계. 계간 『시인시각』 발행인 역임. 제1회 미네르바작품상 등 수상.